수원시 팔달구청에서 제작한 반려동물 문화교실 교육영상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 <함께해요 펫티켓!>입니다.

수원시 팔달구청에서 제작한 반려동물 문화교실 교육영상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 <금쪽같은 내 견>입니다. 

 

수원시 팔달구청에서 제작한 반려동물 문화교실 <행동교정> 편입니다. 

 

수원시 팔달구청에서 제작한 반려견 올바른 산책교육 동영상입니다.

 

印觀(인관) 賣綿於市(매면어시)할새 有署調者以穀買之而還(유서조자이곡매지이환)이러니 有鳶(유연)攫其綿(확기면)하여 墮印觀家(타인관가)어늘 印觀(인관)歸于署調曰(귀우서조왈) 鳶墮汝綿於吾家(연타녀면어오가)()還汝(환녀)하노라 署調曰(서조왈) ()攫綿與汝(확연여녀)天也(천야)吾何受爲(오하수위)리오 印觀曰(인관왈) 然則還汝穀(연즉환녀곡)하리라 署調曰(서조왈) 吾與汝者市二日(오여녀자시이일)이니 穀已屬汝矣(곡이속녀의)라하고 二人(이인)相讓(상양)이라 幷棄於市(병기어시)하니 掌市官(장시관)以聞王(이문왕)하여 並賜爵(병사작)하니라

  (신라 때) 인관이 장에서 솜을 파는데 서조가 곡식으로써 솜을 사서 돌아갔는데 솔개가 그 솜을 채 가지고 인관의 집에 떨어뜨렸다. 인관이 서조에게 솜을 돌려보내며 말하기를, “솔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으므로 너에게 돌려보낸다.” 하니, 서조는 말하기를, “솔개가 솜을 채다가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이 한 일이다. 내가 어찌 받겠는가?” 하였다. 인관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솜 값으로 받은 너의 곡식을 돌려보내겠다.” 하자, 서조가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준 지가 벌써 두 장()이 지났으니, 곡식은 이미 너의 것이 되었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다가 솜과 곡식을 다 함께 장에 버리니, 시장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모두 벼슬을 주었다.

 

洪公耆燮(홍공기섭)少貧甚無聊(소빈심무료)러니 一日朝(일일조)婢兒踊躍獻七兩錢曰(비아용약헌칠양전왈) 此在鼎中(자재정중)하니 米可數石(미가수석)이요 柴可數馱(시가수태)天賜(천사)니이다 公驚曰(공경왈) 是何金(시하금)고하고 卽書失金人推去等字(즉서실금인추거등자)하여 付之門楣而待(부지문미이대)러니 俄而姓劉者來問書意(아이성유자래문서의)어늘 公悉言之(공실언지)한대 劉曰理無失金於人之鼎內(유왈리무실금어인지정내)하니 果天賜也(과천사야)盍取之(합취지)닛고 公曰非吾物(공왈비오물)()劉俯伏曰(유부복왈) 小的(소적)昨夜(작야)爲窃鼎來(위절정래)하다가 還憐家勢蕭條而施之(환련가세소조이시지)러니 今感公之廉价(금감공지렴개)하고 良心自發(양심자발)하여 誓不更盜(서불갱도)하고 願欲常侍(원욕상대)하오니 勿慮取之(물려취지)하소서 公卽還金曰汝之爲良則善矣(공즉환금왈여지위양즉선의)金不可取(금불가취)라하고 終不受(종불수)하니라 ()公爲判書(공위판서)하고 其子在龍(기자재룡)爲憲宗國舅(위헌종국구)하며 劉亦見信(유역견신)하여 身家大昌(신가대창)하니라

  홍공(洪公) 기섭(耆燮)이 젊었을 때 가난하여 매우 무료(無聊)하였는데, 하루는 아침에 어린 계집종이 기쁜 듯 뛰어와 돈 일곱 냥을 바치며 말하기를, “이것이 솥 안에 있었으니, 쌀이 몇 섬일 수 있고, 나무가 몇 바리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하였다. 공이 놀라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된 돈인가?”하고 곧 돈 잃은 사람은 와서 찾아가라는 글을 써서 대문에 붙여 놓고 기다렸다. 얼마 후 성이 유()씨인 사람이 찾아와 글 뜻을 묻자, 공은 자세히 그 내용을 말해 주었다. 유가가 말하기를, “이치상 남의 솥 안에 돈을 잃는 일은 없으니, 참으로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왜 취하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찌하리오?” 하였다. 유씨가 엎드려 말하기를, “소인이 어젯밤에 솥을 훔치러 왔다가 도리어 가세(家勢)가 너무 쓸쓸한 것을 불쌍히 여겨 이것을 놓고 돌아갔습니다. 지금 공의 청렴(淸廉)에 감동하고 양심이 저절로 우러나 도둑질을 아니할 것을 맹세하고, 앞으로는 항상 옆에서 모시기를 원하오니 염려 마시고 취하소서.” 하였다. 공이 곧장 돈을 돌려주며 말하기를, “네가 착하게 된 것은 좋으나 이 돈은 취할 수 없다.” 하고 끝내 받지 않았다. 뒤에 공은 판서가 되고 그의 아들 재룡(在龍)은 헌종(憲宗)의 국구(國舅)가 되었으며, 유씨 또한 신임을 얻어 몸과 집안이 크게 번창하였다.

  * 洪耆燮 : 홍기섭은 조선 순조 때 인물, 본관은 남양이며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의 할아버지로 형조판서를 지냈고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아버지

 

高句麗平原王之女(고구려평원왕지녀)幼時(유시)好啼(호제)러니 王戱曰(왕희왈) 以汝(이녀)將歸愚溫達(장귀우온달)하리라 及長(급장)欲下嫁于上部高氏(욕하가우상부고씨)한대 女以王不可食言(여이왕불가식언)이라하여 固辭(고사)하고 終爲溫達之妻(종위온달지처)하니라 蓋溫達(개온달)家貧(가빈)하여 行乞養母(행걸양모)하니 時人(시인)目爲愚溫達也(목위우온달)러라 一日(일일)溫達(온달)自山中(자산중)으로 負楡皮而來(부유피이래)하니 王女訪見曰吾乃子之匹也(왕녀방견왈오내자지필야)라하고 乃賣首飾(내매수식)하여 而買田宅器物頗富(이매전택기물파부)하고 多養馬以資溫達(다양마이자온달)하여 終爲顯榮(종위현영)하니라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딸이 어렸을 때 울기를 잘하여 왕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너를 장차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낼 것이다.” 하였다. 딸이 자라서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자 딸은 임금이 식언(食言)을 해서는 안 된다.” 하여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온달은 집이 가난하여 돌아다니며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니 당시 사람들이 지목하여 바보 온달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온달이 산속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돌아오니, 임금의 딸이 찾아와 보고 말하기를, “제가 바로 당신의 베필입니다.” 하고는 머리의 장식물을 팔아 밭과 집과 기물을 매우 넉넉하게 사들이고, 말을 많이 길러 온달을 도와 마침내 높은 지위에 올라 영화롭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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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順(손순)家貧(가빈)하여 與其妻(여기처)傭作人家以養母(용작인가이양모)할새 有兒每奪母食(유아매탈모식)이라 ()謂妻曰(위처왈) 兒奪母食(아탈모식)하니 ()可得(가득)이어니와 母難再求(모난재구)라하고 乃負兒往歸醉山北郊(내부아왕귀취산북교)하여 欲埋掘地(욕매굴지)러니 忽有甚奇石鍾(홀휴심기석종)이어늘 驚怪試撞之(경괴시당지)하니 舂容可愛(춘용가애)妻曰得此奇物(처왈득차기물)殆兒之福(태아지복)이라 埋之不可(매지불가)라한대 ()以爲然(이위연)하여 將兒與鍾還家(장아여종환가)하여 懸於樑撞之(현어량당지)러니 ()聞鍾聲淸遠異常而覈聞其實(문종성청원이상이핵문기실)하고 曰 昔()郭巨埋子(곽거매자)天賜金釜(천사금부)러니 今孫順埋兒(금손순매아)地出石鍾(지출석종)하니 前後符同(전후부동)이라하고 賜家一區(사가일구)하고 歲給米五十石(세급미오십석)하니라

  손순(孫順)이 집이 가난하여 그의 아내와 더불어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하여 그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아이가 있어 언제나 어머니의 잡수시는 것을 빼앗는지라, ()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아이가 어머니의 잡수시는 것을 빼앗으니 아이는 또 얻을 수 있거니와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렵다.”하고는, 마침내 아이를 업고 귀취산(歸醉山) 북쪽 교외로 가서 묻으려고 땅을 팠는데, 문득 매우 이상한 석종(石鍾)이 있거늘 놀랍고 괴이하게 여겨 시험삼아 두드려 보니 소리가 멀리 퍼져 사랑스러웠다. 아내가 말하기를, “이 기이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 아이의 복일 듯하니 땅에 묻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라고 하자, 손순도 그렇게 생각하여 아이와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대들보에 매달고 이것을 쳤다. 임금이 종소리가 맑고 멀리 퍼져 이상함을 듣고 그 사실을 자세히 물어서 알고 말하기를, “옛적에 곽거(郭巨)가 아들을 묻었을 땐 하늘이 금으로 만든 솥을 주시더니 이제 손순이 아들을 묻자 땅에서 석종이 나왔으니 앞과 뒤가 서로 꼭 맞는다.”라고 말하고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쌀 오십 석을 주었다.

  * 孫順 : 경주 손씨(慶州孫氏)의 시조(始祖)로 신라(新羅) 흥덕왕(興德王)때 신라 삼기(三器)의 하나인 석종(石鐘)을 얻었다는 효자(孝子)로 알려져 있다.

 

尙德(상덕)値年荒癘疫(치년황여역)하여 父母飢病濱死(부모기병빈사)尙德(상덕)日夜不解衣(일야불해의)하고 盡誠安慰(진성안위)하되 無以爲養(무이위양)이면 則刲髀肉食之(즉규비육사지)하고 母發癰(모발옹)吮之卽癒(전지즉유)()嘉之(희지)하여 賜賚甚厚(사뢰심후)하고 命旌其門(명정기문)하고 立石紀事(립석기사)하니라

  상덕(尙德)은 흉년이 들고 열병이 유행하는 때를 만나 부모가 굶주리고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 상덕이 낮이나 밤이나 옷을 벗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위안하였으나, 봉양할 것이 없으면 넓적다리 살을 베어 잡수시게 하고, 어머니가 종기가 나자 입으로 빨아 곧 낫게 하였다. 임금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 물건을 하사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명하여 그 마을에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게 하고 비석을 세워 이 일을 기록하게 하였다.

  * 尙德 : 신라 때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都氏家貧至孝(도씨가빈지효)賣炭買肉(매탄매육)하여 無闕母饌(무궐모찬)러라 一日(일일)於市(어시)晩而忙歸(만이망귀)러니 鳶忽攫肉(연홀확육)이어늘 都悲號至家(도비호지가)하니 鳶旣投肉於庭(연기투육어정)이러라 一日(일일)母病索非時之紅柿(모병색비시지홍시)어늘 都彷徨柿林(도방황시림)하여 不覺日昏(불각일혼)이러니 有虎屢遮前路(유호누차전로)하고 以示乘意(이시승의)都乘至百餘里山村(도승지백여리산촌)하여 訪人家投宿(방인가투숙)이러니 俄而主人(아이주인)饋祭飯而有紅柿(궤제반이유홍시)都喜(도희)하여 問柿之來歷(문시지래력)하고 且述己意(차술기의)한대 答曰(답왈) 亡父嗜柿(망부기시)()每秋(매추)擇柿二百個(택시이백개)하여 藏諸窟中(장제굴중)하여 而至此五月(이지차오월)이면 則完者(즉완자) 不過七八(불과칠팔)이라가 今得五十個完者(금득오십개완자)()心異之(심이지)러니 是天感君孝(시천감군효)라하고 遺以二十顆(유이이십과)어늘 都謝出門外(도사출문외)하니 虎尙俟伏(호상사복)이라 乘至家(승지가)하니 曉雞喔喔(효계악악)이러라 ()母以天命(모이천명)으로 ()都有血淚(도유혈루)러라

  도씨(都氏)는 집이 가난하였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숯을 팔아 고기를 사서 어머니의 반찬을 빠짐없이 공양하였다. 하루는 시장에서 늦어 바삐 돌아오는데 솔개가 갑자기 고기를 채 가거늘 도씨가 슬피 울부짖으며 집에 돌아와 보니 솔개가 이미 고기를 집안 뜰에 던져 놓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병이 나서 제철이 아닌 홍시를 찾거늘 도씨가 감나무 숲을 방황하여 날이 저문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있어 여러 번 앞길을 가로막고 타라는 뜻을 표시하였다. 도씨가 호랑이를 타고 백 여리나 되는 산 동네에 이르러 인가를 찾아 투숙하였는데, 얼마 후 집주인이 제삿밥을 차려 내오는데 홍시가 있었다. 도씨는 기뻐하여 감의 내력을 묻고 또 자신의 뜻을 말하자, 대답하여 말하기를,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감을 즐기셨으므로 해마다 가을에 감 이백 개를 골라 굴 안에 감추어 두되 이 오월에 이르면 완전한 것이 일곱 여덟 개에 지나지 않았는데 올해는 오십 개의 완전한 것을 얻었으므로, 마음속에 이상하게 여겼더니, 이것은 하늘이 그대의 효성에 감동한 것이다.”하고는 이십 개를 내주었다. 도씨가 사례하고 문밖에 나오니, 호랑이가 아직도 엎드려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닭이 울었다. 뒤에 어머니가 천명(天命)으로 돌아가시자, 도씨는 피눈물을 흘렸다.

  * 都氏 : 조선 철종 때 사람

 

 

幼兒(유아)或詈我(혹리아)하면 我心(아심)覺懽喜(각환희)하고 父母(부모)嗔怒我(진노아)하면 我心(아심)反不甘(반불감)이라 一喜懽一不甘(일희환일불감)하니 待兒待父心何懸(대아대부심하현)勸君今日逢親怒(권군금일봉친노)어든 也應將親作兒看(야응장친작아간)하라

  어린 자식이 혹시 나를 꾸짖으면 내 마음은 기쁘게 깨닫고 부모가 나를 꾸짖고 노하면 내 마음에 도리어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나는 기쁘고 하나는 달갑지 않아하니 아이를 대하고 어버이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 그다지도 다른고? 그대에게 권하니, 이제 어버이의 노여워하시면 또한 마땅히 어버이를 어린아이로 대하듯 해보아라.

 

兒曹(아조)出千言(출천언)하되 君聽常不厭(군청상불염)하고 父母(부모)一開口(일개구)하면 便道多閑管(편도다한관)이라 非閑管親掛牽(비한관친괘견)이니 皓首白頭(호수백두)多諳練(다암간)이라 勸君敬奉老人言(권군경봉노인언)하고 莫敎乳口爭長短(막교유구쟁장단)하라

  어린 자식이 많은 말을 하면 들어도 항상 싫어하지 않으면서 부모는 한번만 말을 하여도 잔소리가 많다고 한다. 쓸데없는 참견이 아니라 어버이가 마음에 걸리고 끌려서이니 흰머리가 되도록 긴 세월에 겪어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권하니 늙은 사람의 말을 공경하여 받들고, 젖냄새 나는 입으로 길고 짧음을 다투려 하지 마라.

 

幼兒尿糞穢(유아뇨분예)君心(군심)無厭忌(무염기)로되 老親涕唾零(노친체타령)反有憎嫌意(반유증혐의)니라 六尺軀來何處(육척구래하처)父精母血成汝體(부정모혈성여체)니라 勸君敬待老來人(권군경대노래인)하라 壯時爲爾筋骨敝(장시위이근골폐)니라

  어린 자식의 오줌과 똥의 더럽지만 싫어하지 않고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는 것은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한다. 그대 여섯 자의 몸이 어디서 나왔는고?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그대의 몸이 이루어졌다. 그대에게 권하니, 늙어가는 사람을 공경스레 대접하라. 젊었을 때 부모는 그대를 위하여 살과 뼈가 닳으셨도다.

 

看君晨入市(간군신입시)하여 買餠又買餻(매병우매고)하니 少聞供父母(소문공부모)하고 多說供兒曹(다설공아조)親未啖兒先飽(친미담아선포)하니 子心(자심)不比親心好(불비친심호)勸君多出買餠錢(권군다출매병전)하여 供養白頭光陰少(공양백두광음소)하라

  그대가 새벽에 시장에 가서 밀가루 떡을 사고 또 흰떡을 사는 데 부모를 공양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자식에게 준다고 대부분 말한다. 어버이는 아직 맛보지도 않았건만 제자식만 먼저 배부르니, 자식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에 비할 수 없음이라. 그대에게 권하니, 떡 살 돈을 많이 내어 흰머리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버이를 공양하는 것이 찰나처럼 짧으니라.

 

市間賣藥肆(시간매약사)惟有肥兒丸(유유비아환)하고 未有壯親者(미유장친자)하니 何故兩般看(하고양반간)兒亦病親亦病(아역병친역병)醫兒不比醫親症(의아불비의친증)이라 割股還是親的肉(할복환시친적육)이니 勸君亟保雙親命(권군극보쌍친명)하라

  시장 약 파는 가게에는 오직 아이를 살찌게 하는 환약만 있고, 어버이를 튼튼하게 하는 약은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이도 병들고 어버이도 병들었을 때 아이의 병을 고치는 것이 어버이의 병을 고치는 것에 비할 수 없다. 다리를 베어서라도 두루 어버이의 살이로다. 그대에게 권하니 빨리 어버이의 목숨을 보호하라.

 

富貴(부귀)養親易(양친이)로되 親常有未安(친상유미안)하고 貧賤(빈천)養兒難(양아난)하되 兒不受饑寒(아불수기한)이라 一條心兩條路(일조심양조로)爲兒終不如爲父(위아종불여위부)이라 勸君養親如養兒(권군양친여양아)하고 凡事(범사)莫推家不富(막추가불부)하라

  부귀하하여 어버이를 봉양하기는 쉽지만 어버이는 항상 안녕하시지 못하고 가난하고 천하면 자식을 기르기가 어렵지만 자식은 배고픔과 추위를 받지 않는다. 한 가지 마음 두 가지 길에 자식을 위하는 것이 마침내 어버이를 위하는 것만 같지 못하도다. 그대에게 권하니, 양친을 섬기기를 자식을 키우듯이 하고 모든 일을 집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미루지 말라.

 

養親(양친)只二人(지이인)로되 常與兄弟爭(상여형제쟁)하고 養兒(양아)雖十人(수십인)이나 君皆獨自任(군개독자임)이라 兒飽煖親常問(아포난친상문)하되 父母饑寒不在心(부모기한불재심)이라 勸君養親(권군양친)須竭力(수갈력)하라 當初衣食(당초의식)被君侵(피군침)이니라

  양친은 다만 두 분이로되 봉양함에는 늘 형제들과 다투고 자식을 기를 때는 비록 열 명이라도 모두 그대 혼자 스스로 맡는다. 자식에게 배부르고 따뜻한지는 항상 친절히 물으면서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은 마음에 있지 않다. 그대에게 권하니 부모를 봉양함에 반드시 힘을 다하라. 당초에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그대에게 빼앗기셨도다.

 

親有十分慈(친유심분자)하되 君不念其恩(군불념기은)하고 兒有一分孝(아유일분효)하면 君就揚其名(군취양기명)이라 待親暗待兒明(대친암대아명)하니 誰識高堂養子心(수식고당양자심)勸君漫信兒曹孝(권군만신아조효)하라 兒曹樣子在君身(아조친자재군신)이니라

  어버이는 자식을 십분 사랑하시지만 그대는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아니한다. 제 자식이 조금만 효도하면 그대는 곧 그 이름을 드러낸다. 어버이를 대접함엔 어둡고 자식을 대함엔 밝으니 누가 어버이의 자식 기르는 마음을 알까? 그대에게 권하니, 네 자식의 효도를 무조건 믿지 말아라. 네 자식의 본보기가 그대 자신이니라. 어버이에 대한 효도는 곧 자신을 위한 것이다. 자식은 은연중에 그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인간으로서 가족간의 도리를 깨달아 배우게 된다. 확실한 본보기가 곧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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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曰(주역왈) 善不積(선불적)이면 不足以成名(부족이성명)이요 惡不積(악불적)이면 不足以滅身(부족이멸신)이어늘 小人(소인)以小善(이소선)으로 爲无益而弗爲也(위무익이불위야)하고 以小惡(이소악)으로 爲无傷而弗去也(위무상이불법야)니라 ()惡積而不可掩(악적이불가엄)이요 罪大而不可解(죄대이불가해)니라

  주역에서 말하기를 선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을 쌓지 않으면 몸을 망치지 않는다. 소인은 작은 선은 유익함이 없다고 하여 행하지 않고, 작은 악은 해로움이 없다고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 가리지 못하고 죄가 커져 풀지 못한다.” 하였다.

 

履霜(이상)이면 堅氷至(견빙지)이니 臣弑其君(신시기군)하며 子弑其父(자시기부)非一朝一夕之事(비일조일석지사)其所由來者漸矣(기소유래자점의)니라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에 이르는 때가 되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며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패륜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유래하는 것이 점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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