顔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안연 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안연왈 청문기목 자왈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안연왈 회수불민 청사사어의)

안연이 에 대해서 묻자 공자 말하길 자신(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어느날 사욕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간다면 천하가 인을 허여한다. 인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있겠는가?” 하였다. 안연이 그 조목을 묻자 공자 말하길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하였다. 안연이 말하길 ()가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청컨대 말씀해 주신 것을 따르겠습니다.”

 

仲弓 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중궁 문인 자왈 출문여견대빈 사민여승대제 기소불욕 물시어인 재방무원 재가무원)

仲弓曰 雍雖不敏 請事斯語矣(중궁왈 옹수불민 청사사어의)

중궁(冉雍)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길 문밖에 나가면 큰 손님을 뵌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백성들에게 원망받지 않고 가족들에게 원망받지 않는 것이다.” 중궁이 말하길 ()가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그 말씀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司馬牛問仁 子曰 仁者 其言也訒 曰 其言也訒 斯謂之仁矣乎 子曰 爲之難 言之得無訒乎

(사마우문인 자왈 인자 기언야인 왈 기언야인 사위지인의호 자왈 위지난 언지득무인호)

사마우가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길 어진 사람은 그 말을 참아서 한다.” <사마우가> “그 말을 참아서 하면 이를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묻자, 공자가 말하길 그것을 행(실천)하기 어려우니 말을 참아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 과묵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다.

* 司馬牛 : 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리()로 상퇴(向魋)의 동생

 

司馬牛問君子 子曰 君子 不憂不懼(사마우문군자 자왈 군자 불우불구)

曰 不憂不懼 斯謂之君子矣乎 子曰 內省不疚 夫何憂何懼 (왈 불우불구 사위지군자의호 자왈 내성불구 부하우하구)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 말하길 군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사마우가>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군자라 말할 수 있습니까?” 묻자, 공자 답하길 속으로 살펴보아 거리낌이 없으면 어찌 근심이 있고 두려움이 있겠느냐?” 하였다.

* () : 오랜 병, 마음이 괴롭고 가책을 느끼는 것.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사마우우왈 인개유형제 아독무)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자하왈 상문지의 사생유명 부귀재천)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군자경이무실 여인공이유례 사해지내 개형제야 군자하환호무형제야)

사마우가 걱정하며 말하길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없구나”. 자하가 말하길 ()내 듣기에 삶과 죽음은 운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다.’ 합니다. 군자가 공경하고 실수가 없어 사람들에게 공손하고 예의가 있다면 세상사람들이 모두 형제가 되는 것인데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걱정하십니까? ”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자장문명 자왈 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가위명야이의)

浸潤之譖 膚受之愬不行焉 可謂遠也已矣(침윤지참 부수지소불행언 가위원야이의)

자장이 밝음에 대해 묻자, 공자 말하길 서서히 스며드는 참언(거짓소문)과 피부에 와닿는 무고도 효력이 없다면 밝음이 있다고 할만하다. 서서히 스며드는 참언과 직접적인 무고에도 아무 일이 없다면 멀리 내다볼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足兵 民信之矣(자공문정 자왈 족식족병 민신지의)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 去兵(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삼자 하선 왈 거병)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 去食 自古 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이자 하선 왈 거식 자고 개유사 민무신불립)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길 양식이 풍족하고 병사가 풍족하면 백성들이 믿음이 있을 것이다.” 자공이 말하길 부득이하게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합니까?” (공자) 말하길 병사를 버려라.” 자공이 말하길 부득이하게 버려야 한다면 (남은)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합니까?” (공자) 말하길 양식을 버려라. 옛날부터 모두가 죽음이 있는데 백성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가 없다.(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棘子成曰 君子 質而已矣 何以文爲(극자성왈 군자 질이이의 하이문위)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鞹 猶犬羊之鞹

(자공왈 석호 부자지설 군자야 사불급설 문유질야 질유문야 호표지곽 유견양지곽)

극자성이 말하였다. “군자는 (실질)일 뿐이니 (형식)을 어디에 쓰겠느냐?” 자공이 말하길 애석하구나. 대부(극자성)의 말이 군자답구나. 하지만 사두마차로도 혀에서 나온 말을 따라잡을 수가 없구나. 외형은 실질과 같아져 가고 실질은 외형과 같아져 가는 것이다. 털이 없는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은 털 없는 개와 양의 가죽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 棘子成 : 나라 大夫

* () : 가죽에서 털을 제거하고 무두질을 한 것

 

哀公問於有若曰 年饑用不足 如之何 有若對曰 盍徹乎 曰 二吾猶不足 如之何其徹也

(애공문어유약왈 연기용부족 여지하 유약대왈 합철호 왈 이오유부족 여지하기철야)

對曰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대왈 백성족 군숙여부족 백성부족 군숙여족)

애공이 유약에게 묻기를 흉년이 들어 쓸 것(국가재정)이 부족하니 어찌해야 합니까?” 유약이 대답하여 말하길 철법(10분의 1)을 시행하시지요” (애공이) 말하길 “(10분의)2도 부족한데 어찌 그 철법을 할 수 있겠는가?” (유약이) 대답하여 말하길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가 어찌 부족하겠습니까? 백성이 부족하면 군주가 어찌 풍족하겠습니까?” 하였다.

* 주나라 제도는 한 가장이 토지 百畝(백무)를 받아서 농사를 짓는데 대체로 백성들은 10분의 9할을 얻고, 제후는 1할을 취했고 이것을 철()이라고 하였다. 노나라는 선공 때로부터 ()()를 내게 하여 10분의 1할을 더 걷어서 10분의 2를 취하게 되었다.

 

子張問 崇德辨惑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愛之 欲其生 惡之 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誠不以富 亦祗以異

(자장문 숭덕변혹 자왈 주충신 사의 숭덕야 애지 욕기생 오지 욕기사 기욕기생 우욕기사 시혹야 성불이부 역지이이)

자장이 덕을 숭상하고 미혹함을 분별함을 묻자, 공자 말하길 성실과 신의를 주로하고 의를 따르는 것이 덕을 숭상하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그가 죽기를 바라니 이미 살기를 바라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이 미혹인 것이다. 진실로 부유함에 의거하지 않고 또한 이상함으로써 구할 뿐이다.”

 

齊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제경공 문정어공자 공자대왈 군군신신부부자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공왈 선재 신여군불군 신불신 부불부 자불자 수유속 오득이식저아)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길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하는 것입니다.” 경공이 말하길 좋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 노릇하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 하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 노릇 하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하지 않는다면 비록 곡식이 있어도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子曰 片言 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 無宿諾 (자왈 편언 가이절옥자 기유야여 자로 무숙락)

공자가 말씀하시길 간결한 말로 옥사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로이다. 자로는 승낙한 것을 묵힌 적이 없었다.”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 使無訟乎(자왈 청송 오유인야 필야 사무송호)

공자가 말하길 송사를 처리하는 것은 나는 다른 사람과 같다. 필요한 것은 송사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子張 問政 子曰 居之無倦 行之以忠(자장 문정 자왈 거지무권 행지이충)

자장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 말하길 자리에 있으면 게으름이 없게 하고 행함에 있어 충심으로 하는 것이다.”

 

子曰 君子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자왈 군자 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공자가 말하길 군자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한다면 또한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子曰 君子 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 反是(자왈 군자 성인지미 불성인지악 소인 반시)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고 다른 사람의 악함을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데 소인은 이것과 반대느니라.”

 

季康子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계강자 문정어공자 공자대왈 정자 정야 자솔이정 숙감부정)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가 답하여 말하길 정치하는 것은 바른 것입니다. 당신이 솔선하여 바르게 한다면 누가 어찌 감히 부정하겠습니까?”

 

季康子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欲 雖賞之 不竊(계강자환도 문어공자 공자대왈 구자지불욕 수상지 불절)

계강자가 도둑을 걱정하여 공자에게 묻자, 공자 답하여 말하길 진실로 당신이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비록 상을 주더라도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季康子 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계강자 문정어공자왈 여살무도 이취유도 하여)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 善矣 君子之德 風 小人之德 草 草 上之風 必偃

(공자대왈 자위정 언용살 자욕선 이민 선의 군자지덕 풍 소인지덕 초 초 상지풍 필언)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으며 무도한 사람을 죽여서 도를 있게 하면 어떻습니까?” 하자, 공자 대답하며 말하길 당신이 정치를 함에 있어 어찌 죽임을 쓴다는 말입니까? 당신이 선을 하고자 한다면 백성들도 선할 것입니다. 군자의 덕을 바람이라고 한다면 소인의 덕은 풀 풀입니다.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게 되어 있습니다.”

 

子張問 士何如 斯可謂之達矣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子張 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자장문 사하여 사가위지달의 자왈 하재 이소위달자 자장 대왈 재방필문 재가필문)

子曰 是 聞也 非達也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자왈 시 문야 비달야 부달야자 질직이호의 찰언이관색 려이하인 재방필달 재가필달)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부문야자 색취인이행위 거지불의 재방필문 재가필문)

자장이 물었다. “선비는 어찌하면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 말하길 무엇이냐? 제가 말하는 통달이라는 것이?” 자장이 대답하길 나라에 있어도 소문이 나고 집에 있어도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하길 이것은 명성이지 통달이 아니다. 통달했다는 것은 기질이 바르고 의를 좋아하며 말을 살펴서 하고 낯빛을 관찰하여 생각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통달하고 집에서도 반드시 통달할 것이다. 대저 (거짓)명성이란 것은 겉으로는 인을 취하나 행동은 벗어나는데 (자신이) 어질다고 여기고 의심하지 않는다. 나라에서 일을 해도 소문이 나고 집에 있어도 소문이 난다.”

 

樊遲從遊於舞雩之下 曰 敢問崇德脩慝辨惑 (번지종유어무우지하 왈 감문숭덕수특변혹)

子曰 善哉 問 先事後得 非崇德與 攻其惡 無攻人之惡 非修慝與

(자왈 선재 문 선사후득 비숭덕여 공기악 무공인지악 비수특여)

一朝之忿 忘其身 以及其親 非惑與 (일조지분 망기신 이급기친 비혹여)

번지가 (공자를) 따라서 무우의 아래에 갔었는데 말하길 감히 덕을 높이고 간악함을 다스리고 미혹함을 분별함을 묻겠습니다.” 공자 말하길 질문이 좋구나, 일을 먼저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꾸짖고 남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다면 간악함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아침의 분노로 자신을 잊어서 (화가) 그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함이 미혹됨이 아니겠는가?”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번지문인 자왈 애인 문지 자왈 지인)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번지미달 자왈 거직조저왕 능사왕자직)

樊遲退 見子夏曰 鄕也 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번지퇴 견자하왈 향야 오현어부자이문지 자왈 거직조저왕 능사왕자직 하위야)

子夏曰 富哉 言乎 (자하왈 부재 언호)

舜有天下 選於衆 擧皐陶 不仁者遠矣(순유천하 선어중 거고요 불인자원의)

湯有天下 選於衆 擧伊尹 不仁者遠矣(탕유천하 선어중 거이윤 불인자원의)

번지가 인을 묻자 공자가 말하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를 묻자,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이다.” 하였다. 번지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가 말하길 정직한 사람을 등용해서 비뚤어진 사람 위에 앉히면 비뚤어진 사람이 바르게 되는 것이다.” 번지가 물러가서 자하를 보고 물었다. “지난번 공자를 뵙고 지를 물었는데 공자께서는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버리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다.’ 하셨는데 무슨 말씀인가?” 자하가 말하였다. “풍부하구나! 말씀이여!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림에 여러 사람 중에서 가려서 고요를 등용하시니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고 탕임금이 다스릴 때 무리 가운데 가려서 이윤을 등용해 쓰니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리 사라졌다.”

 

子貢 問友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 (자공 문우 자왈 충곡이선도지 불가즉지 무자욕언)

자공이 벗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하길 충성스럽게 알려주고 잘 인도하되 불가능하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지 말게 하여야 한다.”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증자왈 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

증자가 말하길 군자는 학문을 함으로써 벗을 모으고 인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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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先進於禮樂 野人也 後進於禮樂 君子也 如用之則吾從先進

  (자왈 선진어예악 야인야 후진어예악 군자야 여용지즉오종선진)

   공자가 말씀하시길 “(사람들이 말하길) 예악에 있어서 선배(옛사람)는 질박한 사람이고 예악에 있어서 후배(현재 사람)는  군자라고 하는데, 만약 그것을 쓴다면 나는 선배를 따를 것이다.”

 

子曰 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자왈 종아어진채자 개불급문야)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政事 冉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

   (덕행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어 재아 자공 정사 염유 계로 문학 자유 자하)

   공자가 말씀하시길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나를 따르던 자들이 모두 (지금) 문하에 있지 않구나.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고, 언어에는 재아. 자공이요, 정사에는 염유, 계로이고 문학에는 자유, 자하’”로다.

   *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따르던 자가 많았었는데 공자가 말하던 당시 모두 문하에 있지 않았다.

 

子曰 回也 非助我者也 於吾言 無所不說(자왈 회야 비조아자야 어오언 무소불열)

   공자가 말하길 안회는 나를 돕는 자가 아니다. (나의) 말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 없다.”

 

子曰 孝哉 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자왈 효재 민자건 인불간어기부모곤제지언)

   공자가 말하길 “‘라면 민자건이다. 사람들이 그 부모와 형제의 (칭찬하는) 말에 흠을 잡지 못하는 구나

 

南容 三復白圭 孔子 以其兄之子 妻之(남용 삼복백규 공자 이기형지자 처지)

   남용이 백규를 (매일) 세번 반복해 외우니 공자는 그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 白圭 : 詩經<大雅 抑>에 나오는 구절, ‘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백옥(백규)의 흠은 오히려 갈아 없앨 수 있지만 이 말의 흠은 없앨 수가 없다)’

 

季康子問 弟子 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계강자문 제자 숙위호학 공자대왈 유안회자호학 불행단명사의 금야즉무)

   계강자가 물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안회라는 자가 있어 학문을 좋아한다.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다. 지금은 없다.”

   * () : 없다는 뜻으로 쓰일 때 발음은 이다.

 

顔淵 死 顔路 請子之車 以爲之槨(안연 사 안로 청자지거 이위지곽)

   子曰 才不才 亦各言其子也 鯉也死 有棺而無槨 (자왈 재불재 역각언기자야 리야사 유관이무곽)

   吾不徒行 以爲之槨 以吾從大夫之後 不可徒行也 (오부도행 이위지곽 이오종대부지후 불가도행야)

   안연이 죽자 (안연의 아버지) 안로는 공자의 수레를 청하여 그것으로 곽(외관)을 만들고자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재주가 있던지 없던지 역시 각각 자기 아들이라 말한다. (공자의 아들) 이가 죽었을 때 관(내관)은 있었지만 곽(외관)은 없었다. 내가 (수레를 없애) 걸어 다녀 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도보로 다닐 수 없어서 있다.”

 

顔淵 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안연 사 자왈 희 천상여 천상여)

   안연이 죽자 공자가 말하길 ! 하늘이 나를 죽이려는구나!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顔淵 死 子哭之慟 從者曰 子慟矣 曰 有慟乎 非夫人之爲慟而誰爲

   (안연 사 자곡지통 종자왈 자통의 왈 유통호 비부인지위통이수위)

   안연이 죽자, 공자는 애통하게 곡을 하셨다. 종자가 말하길 선생님께서 너무 애통해 하십니다.” (공자가) 말하길 애통함이 있느냐? 이 사람을 위해 애통해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하겠느냐?”

 

顔淵 死 門人欲厚葬之 子曰 不可 門人厚葬之(안연 사 문인욕후장지 자왈 불가 문인후장지)

   子曰 回也 視予猶父也 予不得視猶子也 非我也 夫二三子也(자왈 회야 시여유부야 여부득시유자야 비아야 부이삼자야)

   안연이 죽었다. 제자들이 장사를 후하게 지내려고 하자 공자가 말하길 아니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후하게 장사를 지냈다. 공자가 말하길 안회는 나를 아비처럼 보았는데 나는 자식처럼 보지 못했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한 것이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曰 未知生 焉知死

   (계로문사귀신 자왈 미능사인 언능사귀 감문사왈 미지생 언지사)

   계로가 귀신을 섬김을 묻자 공자가 말하길 산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하자 (공자가) 말하길 삶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하였다.

 

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冉有 子貢 侃侃如也 子樂 若由也 不得其死然

   (민자시측 은은여야 자로 행행여야 염유 자공 간간여야 자락 약유야 부득기사연)

   민자건은 옆에서 모실 적에 온화하였고 자로는 굳건하였고 염유와 자공은 강직하였다. 공자는 즐거워하면서도 자로는 명대로 죽지 못할 것 같다.” 하였다.

 

魯人爲長府 閔子騫曰 仍舊貫如之何 何必改作 子曰 夫人 不言 言必有中

   (노인위장부 민자건왈 잉구관여지하 하필개작 자왈 부인 불언 언필유중)

   노나라 사람이 장부(창고)를 고쳐 짓자, 민자건이 옛일을 따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실 고쳐 지어야 겠느냐?”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이 사람(夫人)이 말을 하지 않지만 말을 하면 (도리에) 맞음이 있다.”

 

子曰 由之鼓瑟 奚爲於丘之門 門人 不敬子路 子曰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

   (자왈 유지슬을 해위어구지문 문인 불경자로 자왈유야 승당의 미입어실야)

   공자가 말하였다. “자로가 슬을 어찌하여 나의 문앞에서 연주하는가?” 제자들이 자로를 공경하지 않자. 공자가 말하였다. “자로는 당에 올랐지만 아직 방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子貢問 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 過 商也 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자공문 사여상야 숙현 자왈 사야 과 상야 불급 왈 연즉사유여 자왈 과유불급)

   자공이 (子張)(子夏) 중 누가 어집니까?” 묻자, 공자 말하길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 자공이 묻길 그렇다면 사가 낫습니까?” 공자가 말하길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만 같다.”

 

季氏 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 鳴鼓而攻之可也

   (계씨 부어주공 이구야위지취렴이부익지 자왈 비오도야 소자 명고이공지가야)

   계씨는 주공보다도 재산이 많았는데 (冉有)가 그를 위해 세금을 거둬서(聚斂) 재산을 더 늘려주었다. 공자가 말하길 “(염유는) 우리 무리가 아니니 너희들이 북을 울려 그를 공격함이 옳다.”

 

柴也 愚 參也 魯 賜也 辟 由也 喭(시야 우 삼야 노 사야 벽 유야 언)

   시(子羔)는 어리석고 삼(曾子)은 노둔하고 사(子張)(한쪽으로) 치우치고 유(子路)는 거칠다.

 

子曰 回也 其庶乎 屢空 賜 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자왈 회야 기서호 누공 사 불수명 이화식언 억즉루중)

   공자 말하길 안회는 (도에) 가까운데 자주 굶었고 자공은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물을 늘렸는데 예측하면 많이 맞았다.”

 

子張問 善人之道 子曰 不踐迹 亦不入於室(자장문 선인지도 자왈 불천적 역불입어실)

   자장이 선인의 길을 묻자 공자가 말하길 “(선인의) 자취를 밟지 않으면 역시 (선인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

 

子曰 論篤是與 君子者乎 色莊者乎(자왈 논독시여 군자자호 색장자호)

   공자가 말하길 말하는 것이 독실하면 따른다면 (이 사람은) 군자인가? 겉모습만 그럴듯한 사람인가?”

 

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 其聞斯行之(자로문 문사행저 자왈 유부형재 여지하 기문사행지)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염유문 문사행제 자왈 문사행지)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공서화왈 유야문문사행저 자왈 유부형재 구야문문사행제 자왈 문사행지 적야혹 감문)

   子曰 求也 退故 進之 由也 兼人故 退之(자왈 구야 퇴고 진지 유야 겸인고 퇴지)

   자로가 들으면 곧 이것을 행한다는 무슨 말입니까 묻자. 공자가 부형이 살아계실 때 어찌 듣는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염유가 물었다. “들으면 곧 이것을 행한다.”는 무슨 말입니까? 공자가 말하길 들으면 그대로 행하라하였다. 공서화가 말하길 자로가 들으면 곧 행하여야 합니까?’ 하였을 땐 선생님은 부형이 계시다하였고 염유가 들으면 그대로 행하여야 합니까?’ 물었을 땐 들으면 곧 행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시니 저는 의문이 있어 감히 묻습니다.”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염구는 물러나므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자로는 (보통사람보다) 나아가 있으니 물러나게 한 것이다.”

   * 兼人 : 보통사람보다 나음

 

子畏於匡 顔淵 後 子曰 吾以女爲死矣 曰 子在 回 何敢死 (자외어광 안연 후 자왈 오이여위사의 왈 자재 회 하감사)

   공자가 광 땅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안연이 뒤늦게 오자 공자가 나는 네가 죽었는 줄 알았다.” 하시니, (안연이) 말하길 선생님이 살아계시지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 하였다.

 

季子然問 仲由 冉求 可爲大臣與(계자연문 중유 염구 가위대신여)

   子曰 吾以子爲異之問 曾由與求之問(자왈 오이자위이지문 증유여구지문)

   所謂大臣者 以道事君 不可則止(소위대신자 이도사군 불가즉지)

   今由與求也 可謂具臣矣(금유여구야 가위구신의)

   曰 然則從之者與(왈 연즉종지자여)

   子曰 弑父與君 亦不從也(자왈 시부여군 역불종야)

   계자연이 물었다. “중우와 염구는 대신이라고 부를만 합니까?” 공자가 말하길 나는 네가 특이한 질문을 한 것이라 여겼는데 마침내 중유와 염구를 묻는구나. 이른바 대신이란 도로써 군주를 섬기다가 할 수 없으면 그만두는 것이다.” (계자연이) 말하길 그렇다면 따르는 자들입니까?” (공자가 말하길) “지금 중유와 염구는 갖춘 신하라고 할 수 있다.” (계자연이) “그렇다면 좇을 자입니까?” 하니, 공자 말하길 아비와 군주를 죽이는 것은 또한 따르지 아니할 것이다.”

 

子路使子羔 爲費宰 子曰 賊夫人之子(자로사자고 위비재 자왈 적부인지자)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然後 爲學 (자로왈 유민인언 유사직언 하필독서연후 위학)

   子曰 是故 惡夫佞者(자왈 시고 오부녕자)

   자로가 자고로 하여금 비읍의 읍재(관리)로 삼자 공자가 말하길 남의 자식을 망치는구나자로가 말하길 그곳에 백성이 있고 그곳에 사직이 있는데 어찌 꼭 책을 읽은 연후에야 배움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하길 이 때문에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子路 曾晳 冉有 公西華 侍坐(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 시좌)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자왈 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거즉왈 불오지야 여혹지이 즉하이재)

   子路 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且知方也 夫子哂之

   (자로 솔이이대왈 천승지국 섭호대국지간 가지이사려 인지이기근 유야위지 비급삼년 가사유용차지방야 부자신지)

   求 爾 何如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구 이 하여 대왈 방육칠십 여오육십 구야위지 비급삼년 가사족민 여기예악 이사군자)

   赤 爾 何如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적 이 하여 대왈 비왈능지 원학언 종묘지사 여회동 단장보 원위소상언)

   點 爾 何如 鼓瑟希 鏗爾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

   (점 이 하여 고슬희 갱이사슬이작 대왈 이호삼자자지찬 자왈 하상호 역각언기지야 왈 오춘자 춘복기성 관자오육인 동자육칠인 욕호기 풍호무우 영이귀 부자위연탄왈 오여점야)

   三子者出 曾晳 後 曾晳 曰 夫三子者之言 何如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

   (삼자자출 증석 후 증석 왈 부삼자자지언 하여 자왈 역각언기지야이의)

   曰 夫子何哂由也 曰 爲國以禮 其言 不讓 是 哂之(왈 부자하신유야 왈 위국이예 기언 불양 시 신지)

   唯求則非邦也與 安見方六七十 如五六十而非邦也者(유구즉비방야여 안견방육칠십 여오육십이비방야자)

   唯赤則非邦也與 宗廟會同 非諸侯而何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

   (유적즉비방야여 종묘회동 비제후이하 적야위지소 숙능위지대)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았었는데 공자가 말하길 내가 다소 (나이가) 너희들보다 많으나 그것 때문에 나를 어려워하지 마라. 너희들이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혹여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는냐?” 자로가 경솔하게 대답했다. “천승의 나라가 대국의 사이에 끼어 공격을 받아 기근까지 들거든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하고 또 (도의로) 가는 것을 알게 하겠습니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셨다. (공자가) “염구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염구가) 대답하길 “6~70십리 또는 5~60리의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생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예악에 있어서는 군자를 기다릴 것입니다.” (공자가) “(공서화)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자 대답하길 제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종묘의 일과 (제후들이) 회동할 적에 관복과 의관을 입는 작은 관직을 원합니다.” (공자가) “점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지자 금을 가볍게 타고 있다가 퉁 내려놓고 자세를 고치고 대답하길 “(저는) 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가 다릅니다.” 공자 말하길 어떤 것이 나쁜가? 또한 각자 자신의 뜻을 말하는 것이다.” 하시자 (점이) 말하길 늦봄에 봄옷으로 입고 젊은이 5~6명과 아디 6~7명을 데리고 가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의 광장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올 겁니다.” 공자는 탄복하며 말하길 나는 점을 따르겠다.” 세 사람이 나가자, 증석이 뒤에 있다가 말하길 저 세사람의 말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또한 각자의 뜻을 말했을 뿐이다.” (증석이) “선생님은 어쩌히여 자로에 빙긋이 웃으셨습니까?” 물었다. (공자가) 말하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로써 해야하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웃은 것이다.” (증석이) “염구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까?”하니 (공자는) “어찌 사방 육칠십리와 혹은 오륙십리라고 해서 나라가 아니겠느냐?” 하셨다. (증석이) “그렇다면 적이 말한 것은 나라의 일이 아닙니까?”하니 (공자가) “종묘와 회동하는 것은 제후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적이 작다면 누가 능히 큰 것이 되겠느냐?” 하셨다.

   * 師旅 : 25백명, 5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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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공자어향당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기재종묘조정 변변언 유근이)

   공자께서는 향당(고향)에 계실 때에는 신실하게 하여 말씀을 잘 못하시는 것처럼 하였다. 공자가 종묘와 조정에 계실 때에는 말씀을 잘하시되 다만 삼가셨다.

 

朝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君在 踧踖如也 與與如也

   (조여하대부언 간간여야 여상대부언 은은여야 군재 축적여야 여여여야)

   조정에서 하대부와 말씀하실 때에는 강직하게 하셨으며 상대부와 말씀하실 적에는 온화하게 말씀하셨고 군주가 있을 때는 공경하면서 조심스럽고 예법에 맞게 하였다.

 

君召使擯 色勃如也 足躩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 襜如也

   (군소사빈 색발여야 족확여야 읍소여립 좌우수 의전후 첨여야)

   趨進 翼如也 賓退 必復命曰 賓不顧矣(추진 익여야 빈퇴 필복명왈 빈불고의)

   군주가 시켜 손님을 접대하게 시키면 얼굴빛을 바꾸고 발걸음을 조심하였다. 함께 서있는 빈()에게 읍하시되 손을 좌우로 하였는데 옷의 앞뒤자락이 가지런하셨다. 빨리 나아갈 때는 날개를 펼친 것 같았고 손님이 물러간 뒤에는 반드시 복명하여 말하길 손님이 돌아보지 않고 잘 갔다고 하였다.

   * : 군주가 나가서 손님을 접대하게 한 사람

   * : 낯빛이 변하는 모습

   * 바삐 갈() : 발자국을 조심하는 모양, 독음이 () () () 등으로 읽히고 있다. 중국어 발음은 [jué]

   * : 가지런한 모양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 立不中門 行不履閾(입공문 국궁여야 여불용 입불중문 행불리역)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 似不足者(과위 색발여야 족확여야 기언 사부족자)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 似不息者(섭제승당 국궁여야 병기 사불식자)

   出降一等 逞顔色 怡怡如也 沒階 趨進翼如也 復其位 踧踖如也

   (출강일등 영안색 이이여야 몰계 추진익여야 복기위 축적여야)

   (공자는) 궁문에 들어가실 때 몸을 굽히시어 자신의 자리가 아닌 듯하셨고, 문이 가운데 서지 않으시고 다닐 때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 (군주가 앉는) 자리를 지날 적에는 낯빛을 바꾸고 발걸음을 조심하며 말이 부족한 듯하셨다. 옷자락을 잡고 당을 오르실 때 몸을 굽히시며 숨을 죽여 숨 쉬지 않는 것처럼 하셨다. 나와 한 계단 내려서는 낯빛을 펴고 편안하고 기뻐하시며 계단을 다 내려와서는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빠른 걸음을 하여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는 공경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하였다.

  * 문지방()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足蹜蹜如有循

   (집규 국궁여야 여불승 상여읍 하여수 발여전색 족축축여유순)

   享禮 有容色 私覿 愉愉如也(향례 유용색 사적 유유여야)

(이웃 나라에 방문할 때 가져가는) 홀을 잡을 때 마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허리를 굽히셨고 위로 들 때는 읍을 하는 것처럼 하였고 내릴 때는 (물건을) 줄 때처럼 하시며 낯빛을 바꾸어 조심하며 발걸음을 좁게 하여 좇았다. 예를 드릴 때는 온화한 얼굴빛을 하였고 사적으로 만날 때는 더욱 즐겁게 하였다.

 

君子 不以紺緅 飾 紅紫 不以爲褻服(군자 불이감추 식 홍자 불이위설복)

   當暑 袗絺綌 必表而出之(당서 진치격 필표이출지)

   緇衣 羔裘 素衣 麑裘 黃衣 狐裘(치의 고구 소의 예구 황의 호구)

   褻裘 長 短右袂 必有寢衣 長一身有半(설구 장 단우몌 필유침의 장일신유반)

   狐貉之厚 以居 去喪 無所不佩(호맥지후 이거 거상 무소불패)

   非帷裳 必殺之 羔裘玄冠 不以弔 吉月 必朝服而朝 (비유상 필쇄지 고구현관 불이조 길월 필조복이조)

   군자(공자)는 감색(어두운 남색)이나 추색(검붉은색)으로 테를 두르지 않고 홍색과 자색으로는 평상복을 만들지 않으셨다. 더위가 오면 가는 베옷에 거친 베로 만든 홑옷을 반드시 겉에 있으셨다. 검은 옷에는 흑염소 가죽옷을 입고 흰옷에는 흰사슴 새끼 가죽옷을 입고 노란색 옷에는 여우 가죽옷을 입으셨다. 평상시 입는 가죽옷은 길게 하되 오른쪽 소매를 짧게 하셨다. 반드시 잠옷이 있으니 길이가 한길하고 반이다. 여우와 담비의 두터운 가죽에 거처하셨다. 탈상을 하고 나면 패물을 차지 않는 것이 없으셨다. 예복(주름치마)이 아니면 반드시 (허리의 사이즈에 맞게) 줄이셨다. 흑염소 가죽옷과 검은 관을 하고 조문을 하지 않으셨다. 매월 초하루(吉月)에는 반드시 조복을 입고 조회하셨다.

   * 褻服 : 평상복

   * : 가는 베옷

   * : 거친 베옷

 

齊必有明衣布 齊必變食 居必遷坐(제필유명의포 제필변식 거필천좌)

   (목욕) 재계할 때는 반드시 깨끗한 옷이 있었으니, 베로 만들었다. 재계할 때는 반드시 먹을 것을 바꾸었고 거처하는 것도 반드시 옮기셨다.

 

食不厭精 膾不厭細 食饐而餲 魚餒而肉敗 不食(사불염정 회불염세 식의이애 어뇌이육패 불식)

   色惡不食 臭惡不食 失飪不食 不時不食(색악불식 취악불식 실임불식 불시불식)

   割不正 不食 不得其醬 不食(할부정 불식 부득기장 불식)

   肉雖多 不使勝食氣 唯酒無量 不及亂(육수다 불사승식기 유주무량 불급란)

   沽酒市脯 不食 不撤薑食 不多食(고주시포 불식 불철강식 부다식)

   祭於公 不宿肉 祭肉 不出三日 出三日 不食之矣 (제어공 불숙육 제육 불출삼일 출삼일 불식지의)

   食不語, 寢不言. 雖疏食菜羹, 瓜祭, 必齊如也.(식불어 침불언 수소사채갱 과제 필제여야)

   밥은 정갈한 것을 좋아하셨으며 회는 얇게 썰은 것을 좋아하셨다. 밥이 쉬어 맛이 변한 것과 생선이 상하고 고기가 부패한 것을 드시지 않았다. 색이 나쁜 것을 드시지 않았고 냄새가 역한 것을 드시지 않았으며 간을 맞추지 못한 것을 드시지 않았고 때에 맞는 것(곡식과 과일이 여물지 않은 것)이 아니면 드시지 않았다. 바르게 자른 것이 않으면 드시지 않았고 알맞은 장을 얻지 못하면 드시지 않았다. 고기는 비록 많아도 밥 기운을 이기지 않게 하셨으며 오직 술만이 일정한 양이 없었지만 어지러움에 이르지는 않게 하셨다. 장에서 사온 술과 포를 드시지 않았으며 생강 먹는 것을 물리지 않았고 많이 드시지 않았다. 군주가 있는 곳()에서 제사를 지낼 때 받아온 고기는 밤을 지새우지 않았으며 (집에서) 제사를 지낸 고기는 3일을 넘기지 않았으니 3일을 넘기면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 말하지 않으셨고 침소에 들어서는 말하지 않으셨다. 비록 거친 밥이나 나물국이라도 제사하시면 반드시 엄숙하고 공경하게 하셨다.

   * () : 밥이 습도와 온도에 상한 것

   * () : 맛이 변한 것

   * () : 생선이 상한 것

   * () : 고기가 부패한 것

 

席不正 不坐(석불정 불좌)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 鄕人儺 朝服而立於阼階 (향인음주 장자출 사출의 향인나 조복이립어조계)

   마을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 지팡이를 짚은 분이 나가시면 따라 나가셨다. 마을 사람이 나례를 하면 조복을 입고 동쪽 계단에 서 계셨다.

   * (儺禮) : 귀신을 쫓는 푸닥거리

   * 阼階 : 동쪽 계단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康子饋藥 拜而受之曰 丘未達 不敢嘗

   (문인어타방 재배이송지 강자궤약 배이수지왈 구미달 불감상)

   사람을 다른 나라에 보내어 물으실 때는 두 번 절을 하고 보내셨다. 계강자(季康子)가 약을 보내자 공자는 절을 하며 그것을 받으시며 말씀하시길 ()는 이것을 알지 못하여 감히 맛볼 수 없습니다.”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구분 자퇴조왈 상인호 불문마)

   마구간이 불탔는데 공자가 궁궐에서 돌아와 사람이 다쳤는냐?” 물으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君 賜食 必正席先嘗之 君 賜腥 必熟而薦之 君 賜生 必育之(군 사식 필정석선상지 군 사성 필숙이천지 군 사생 필육지)

   侍食於君 君祭先飯 疾君 視之東首 加朝服拖紳君 命召 不俟駕行矣

   (시식어군 군제선반 질에 군 시지동수 가조복타신이 군 명소 불사가행의)

   군주가 음식을 내리시면 반드시 자리를 바로하고 그것을 맛보셨고 군주가 날것을 내리시면 반드시 익혀서 그것을 제사음식으로 올렸고 군주가 산짐승을 내리시면 반드시 그것을 길렀다. 군주를 모시고 식사를 할 때 군주가 고수레하시면 먼저 밥을 먹었다. 병이 들어 군주가 문병을 오시면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조복을 몸에 덥고 띠를 그 위에 놓으셨다. 군주가 부르면 멍에를 얹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걸어서) 떠났다.

 

入太廟 每事 問(입태묘 매사 문)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일을 물었다.

 

朋友死 無所歸 曰 於我殯 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붕우사 무소귀 왈 어아빈 붕우지궤 수차마 비제육 불배)

   벗이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으면 내가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셨다.” 벗의 선물은 비록 수레와 말이라도 제사 지낸 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않으셨다.

 

寢不尸 居不容 見齊衰者 雖狎 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 必以貌

   (침불시 거불용 견제쇠자 수압 필변 견면자여고자 수설 필이모)

   凶服者 式之 式負版者 有盛饌 必變色而作 迅雷風烈必變(흉복자 식지 식부판자 유성찬 필변색이작 신뇌풍열에 필변)

   잘 때는 시체처럼 자지 않았고 기거하실 때는 모양을 내지 않으셨다. 상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비록 친하더라도 낯빛을 바꾸시고 면류관을 쓴 자와 맹인을 보시면 비록 평복을 입고 있더라도 반드시 예를 갖추시었다. 흉복(상복)을 입은 자에게 예의을 표하고 호적을 짊어진 자에게도 예의를 표했다. 성찬이 있으면 반드시 낯빛을 바꾸고 일어나셨다. 우레가 치고 바람이 사나우면 반드시 낯빛을 바꾸었다.

 

升車 必正立執綏 車中 不內顧 不疾言 不親指 (승차 필정립집수 차중 불내고 불질언 불친지)

   수레에 타서는 반드시 바로 서서 고삐를 잡았다. 수레 안에서는 안을 돌아보지 않고, 빨리 말하지 않으며 손가락으로 친히 가리키지 않았다.

 

色斯擧矣 翔而後集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색사거의 상이후집 왈 산양자치 시재시재 자로공지 삼후이작)

   새도 사람의 낯빛을 보고 날아서 돌다가 다시 앉는다. 공자가 말하길 산기슭의 암꿩이 (물 마시고 모이를 쪼는) 때를 얻었구나! 때를 얻었구나!” 하셨다. 자로가 암꿩을 잡아 올리려 하자, 세 번 냄새를 맡고 날아갔다.

   * : 새가 물 마시고 모이를 쪼는 때

   * : 냄새 맡다(), 石經에는 ()(새가 우는 것)’자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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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 罕言利與命與仁(자 한언리여명여인)

   공자께서는 을 적게 말씀하셨다.

 

達港黨人曰 大哉孔子 博學而無所成名(달항당인왈 대재공자 박학이무소성명)

   子聞之 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자문지 위문제자왈 오하집 집어호 집사호 오집어의)

   달항의 사람들이 위대하구나 공자여. 박학한데도 명성을 이루지 못했구나.” 말하였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문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떤 것에 마음을 다해야겠느냐? 마부가 되어야겠느냐? 궁수가 되어야겠느냐? 나는 마부가 될 것이다.”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자왈 마면 예야 금야순 검 오종중)

   拜下 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違衆 吾從下(배하 예야 금배호상 태야 수위중 오종하)

   공자가 말하길 마면(緇布冠)을 쓰는 것이 본래의 예법인데 지금은 생사로 하니 검소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겠다. <>아래에서 절을 하는 것인 (원래) 예법인데 지금은 위에서 절을 하니 교만한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하는 것에서 어긋나더라도 나는 아래에서 절을 하겠다.”

   * 緇布冠(치포관) : 유생(儒生)이 평시에 쓰던 관(). 검은빛의 베로 만듦.

 

子絶四 毋意毋必毋固毋我(자절사 무의무필무고무아)

   공자는 네 가지를 하지 않았으니 (타당한 근거없이) 마음대로 하지 않았고 단언하지 않았고 고집부리지 않았고 사사롭게 하지 않았다.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자외어광 왈 문왕기몰 문불재자호 천지장상사문야)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 其如予何 (후사자 부득여어사문야 천지미상사문야 광인 기여여하)

   공자가 광() 땅에서 경계를 하였는데 말씀하시길 문왕은 돌아가셨으니 문왕의 도가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장차 이 문왕의 도를 없애고자 하였다면 뒤에 죽는 사람(공자)이 이 도를 알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하늘이 아직 이 도를 없애지 않았으니 광 땅의 사람들이 나를 어찌하겠느냐?”

   * 史記에 보면 陽虎라는 자가 일찍이 광 땅에서 포악한 짓을 했었는데 공자의 모습이 양호와 비슷하여 광 땅 사람들이 오인하여 포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 광 땅에서 포위되었을 때 공자의 말씀이다.

 

大宰 問於子貢 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태재 문어자공 왈 부자성자여 하기다능야 자공왈 고천종지장성 우다능야)

   子聞之曰 大宰 知我乎 吾少也 賤故多能鄙事 君子 多乎哉 不多也

   (자문지왈 태재 지아호 오소야 천고로 다능비사 군자 다호재아 부다야)

   牢曰 子云 吾不試故 藝(뇌왈 자운 오불시고 예)

   태재가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는 성인이십니까? 어찌 그리 재능이 많으십니까?” 자공이 말했다. “진실로 하늘이 풀어놓으신 성인이신 듯하고 또한 재능도 많으십니다.” 공자가 이 것을 듣고 말하길 태재가 나를 아는구나. 내가 어려서 미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에 재능이 많다. 군자는 재능이 많은가? 많지 않다.” 뇌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내가 등용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를 익혔다고 하셨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자왈 오유지호재 무지야 유비부문어아 공공여야 아고기양단이갈언)

   공자가 말하길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촌부가 있어 나에게 묻는다면 아무리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나는 양쪽 끝을 다 들어서 말해준다.”

 

子曰 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자왈 봉조부지 하불출도 오이의부)

   공자가 말하길 봉황새도 오지 않고 황하에서 河圖가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구나

    * ‘河圖(하도)’黃河에서 나온 龍馬의 등에 그려진 그림으로 伏羲(복희) 때에 나왔다.

 

子見齊衰者 冕衣裳者 與瞽者 見之 雖少 必作 過之必趨 (자견자최자 면의상자 여고자 견지 수소 필작 과지필추)

   공자께서는 상복을 입은 사람, 잘 차려입은 사람, 맹인을 만났을 때 비록 나이가 적더라도 반드시 일어나시며 그 곁을 지나실 적에는 반드시 종종걸음으로 가셨다.

   * 齊衰(자최) : 상복, () : 맹인

 

顔淵 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안연 위연탄왈 앙지미고 찬지미견 첨지재전 홀언재후)

  夫子 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競吾才(부자 순순연선유인 박아이문 약아이례 욕파불능 기갈오재)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여유소립탁이 수욕종지 말유야기)

  안연이 크게 탄식하여 말하길 “(공자의 도는)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눈앞에 있다가도 홀연히 뒤에 계신다. 공자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끄시어 (예 현인의) 글과 말씀으로 (나의 견문을) 넓혀주셨고 예로써 나의 행동을 붙잡아 주셨으니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공자의 도가)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아서, 비록 이것을 따르고자 해도 말미암을 데가 없다.”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病間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

   (자질병 자로사문인위신 병간왈 구의재 유지행사야 무신이위유신 오수기 기천호)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 且予縱不得大葬 予死於道路乎

   (차여여기사어신지수야 무녕사어이삼자지수호 차여종부득대장 여사어도로호)

   공자가 병이 심해지자 자로가 문인들을 가신(家臣)이 되게 하였다. 병이 차도가 있자 말씀하시길 오래되었구나. 자로가 거짓을 행하였구나. 나는 가신이 없는데 가신을 두었으니 내가 누구를 속였는가? 하늘을 속였구나. 또 내가 가신의 손에 장례를 치르기보다 차라리 제자들 손으로 장례 치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또한 내가 비록 큰 장례는 얻지 못한다 해도 길거리에 버려져서 장례를 치르겠는냐?”

   * :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가 죽게 되면 장례치를 사람들을 조직하였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이라고 하였다.

   * 病間 : 병이 조금 차도가 있는 것.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沽之哉 我 待賈者也

   (자공왈 유미옥어사 온독이장저 구선고이고제 자왈 고지재고지재 아 대가자야)

   자공이 아름다운 옥이 여기 있다면 이것을 궤에 넣어 보관만 하시겠습니까? 좋을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하자, 공자가 말하길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물건을 볼 줄 아는) 상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 : 보관함, () : , ‘()’ : 파는 것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자욕거구이 혹왈 누 여지하 자왈 군자거지 하루지유)

   공자가 (동쪽의) 오랑캐 땅에 살고자 하시니 혹자가 말하길 누추한데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공자 말하길 군자가 거주한다면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子曰 吾自衛反魯然後 樂正 雅頌 各得其所(자왈 오자위반노연후 악정 아송 각득기소)

   공자가 말하길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후 음악이 바로잡혀서 아()와 송()이 각기 자리를 얻게 되었다.”

 

子曰 出則事公卿 入則事父兄 喪事 不敢不勉 不爲酒困 何有於我哉

   (자왈 출즉사공경 입즉사부형 상사 불감불면 불위주곤 하유어아재)

   공자가 말하길 나가서는 공경을 섬기고 들어와서는 아버지와 형을 섬기고 장례 일을 함에 수고를 다하고 술에 크게 취하지 않는 것,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자재천상왈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공자가 냇가에서 말하였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다.”

 

子曰 吾未見好德 如好色者也(자왈 오미견호덕 여호색자야)

   공자가 말하길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는 것만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饋 止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吾往也

   (자왈 비여위산 미성일궤 지오지야 비여평지 수복일궤 진오왕야)

   공자가 말하길 “<학문은> 비유하자면 산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마지막 한 삼태기를 이루지 않은 것은 내가 스스로 그만둔 것이다. 비유하자면 <산을 만드는데> 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처음 쏟아붓더라도 나아감은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子曰 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자왈 어지이불타자 기회야여)

   공자가 말하길 “<도를> 말해주면 게을리하지 않는 자는 안회이다.”

 

子謂顔淵曰 惜乎 吾見其進也 未見其止也(자위안연왈 석호 오견기진야 미견기지야)

   공자가 안연에 대해 말씀하시길 애석하구나. 내가 그가 나아가는 것을 보았지만 멈추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 안연이 죽자 공자가 이를 애석하게 여기며 하신 말씀

 

子曰 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자왈 묘이불수자 유의부 수이불실자 유의부)

   공자가 말하길 싹이 나고서 꽃이 피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지 않는 것도 있느니라.”

   * : 곡식에 꽃이 피는 것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

   공자가 말하길 후생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어찌 (후생의) 미래가 (나의) 지금만 같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사오십이 되어서도 그런 말을 듣지 못한다면 이 또한 두려울 것이 없다.”

 

子曰 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자왈 법어지언 능무종호 개지위귀)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손여지언 능무열호 역지위귀)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열이불역 종이불개 오말여지하야이의)

   공자가 말하길 예법에 맞는 말은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귀한 것이다. 완곡하게 이끌어 주는 말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마리(속뜻)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뻐하기만 하고 실마리를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잘못을 고치지 못한다면 내가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

 

子曰 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자왈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공자가 말하길 을 주로하고 자기보다 못한 벗을 사귀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라.”

 

子曰 三軍 可奪帥也 匹夫 不可奪志也(자왈 삼군 가탈수야 필부 불가탈지야)

   공자가 말하길 삼군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子曰 衣敝縕袍 與衣狐貉者 立而不恥者 其由也與(자왈 의폐온포 여의호학자 입이불치자 기유야여)

   不忮不求 何用不臧 子路終身誦之 子曰 是道也 何足以臧 (불기불구 하용불장 자로종신송지 자왈 시도야 하족이장)

   공자가 말하길 해진 솜옷을 입고서 여우나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같이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 남을 해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으면 어찌 不善을 행하겠는가? 자로가 <위의 싯구>를 종신토록 외우자, 공자가 말씀하시길 이 도가 어찌 족히 선할 수가 있겠는가?”

    * 不忮不求 何用不臧 : 詩經<衛風 雄雉>詩句

 

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공자가 말하길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가장 늦게 잎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자왈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공자가 말하길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자왈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가여적도 미가여립 가여립 미가여권)

   공자가 말하길 더불어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같은 길로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같은 길로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권도를 함께 할 수는 없다.”

   * (權道) : 일이 경중을 저울질하여 의리에 합하게 하는 것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당체지화 편기반이 기불이사 실시원이)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자왈 미지사야 부하원지유)

   산앵두나무 꽃이여! 바람에 흔들리는구나. 어찌 너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집이 멀구나. 공자가 말씀하시길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멂이 있겠는가?”

   * 정말로 생각이 있다면 멀다고 안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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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자왈 태백 기가위지덕야이의 삼이천하양 민무득이칭언)

공자가 말하길 태백은 그 덕이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천하를 세 번 양보하였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백성들이 그 덕에 대해 칭송하지 못했다.”

* 泰伯 : 나라 太王의 장자로 삼남인 季歷에게 자리를 양보하였다.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자왈 공이무례즉로 신이무례즉사 용이무례즉난 직이무례즉교)

   君子 篤於親則民興於仁 故舊不遺則民不偸(군자 독어친즉민흥어인 고구불유즉민불투)

공자가 말하길 공손하나 예가 없으면 수고롭기만 하고, 신중하나 예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하나 예가 없으면 어지럽게 만들고, 강직하나 예가 없으면 목숨이 위태하다. 군자가 친척에게 돈독하게 하면 백성들이 인을 흥하게 하고 알고 지냈던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는다.”

* 두려워할 (), 목맬 ()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증자유질 소문제자왈 계여족 계여수)

   詩云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시운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이금이후 오지면부 소자)

증자가 병이 있어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불을 걷어 나의 발을 살펴보고 나의 손을 살펴보라. <詩經>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 하라하였는데 이제야 나는 효행의 의무(신체를 훼손하지 않는 것)에서 벗어나게 되었노라. 제자들아

 

曾子有疾 孟敬子問之 曾子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증자유질 맹경자문지 증자언왈 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 기언야선)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籩豆之事則 有司存

   (군자소귀호도자삼 동용모 사원포만의 정안색 사근신의 출사기 사원비패의 변두지사즉 유사존)

증자가 병환이 있자 맹경자가 병문안을 왔는데 증자가 말하길 새는 장차 죽으려할 때 그 울음소리가 처량하고 사람은 장차 죽으려고 할 때 선한 말을 합니다. 군자는 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 세 가지이니 몸가짐을 행함에 폭력적이고 오만한 것을 멀리하고, 낯빛을 바르게 할 때는 믿을 수 있게 하며, 말과 소리를 낼 때에는 비루함과 도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사소한 일(籩豆)은 업무담당자(有司)에게 맡기십시오

 

曾子曰 以能 問於不能 以多 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

   (증자왈 이능 문어불능 이다 문어과 유약무 실약허 범이불교 석자오우상종사어사의)

증자 말하길 능력이 있어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묻고 많으면서도 적은 사람에게 묻고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가득해도 빈 것처럼 하고 (남이) 잘못을 해도 따지지 않는 것을 옛날에 내 벗이 일찍이 이러한 것을 따르고자 하였다.”

 

曾子曰 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君子人與 君子人也

   (증자왈 가이탁육척지고 가이기백리지명 임대절이불가탈야면 군자인여 군자인야)

증자가 말하길 어린 군주를 맡길만 하고, 제후국의 명맥을 맡길 수 있으며, 중요한 시기에 평소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면 군자다운 사람인가? 군자다운 사람이다.”

* 六尺之孤 : 六尺이면 1척이 30cm 정도이니 180cm 정도가 되니 장성한 어른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 1척은 20cm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러면 130~140cm 정도의 키로 초등학생 정도 나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死而後已 不亦遠乎

   (증자왈 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 인이위기임 불역중호아 사이후이 불역원호)

증자가 말하였다. “선비는 의지가 넓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인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후에야 끝이 나니 어찌 멀지 않은가?”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자왈 흥어시 입어례 성어악)

공자가 말하길 시에서 학문이 일어나고 예에서 서며 음악에서 완성이 된다.”

 

子曰 民 可使由之 不可使知之(자왈 민 가사유지 불가사지지)

공자가 말하길 백성은 그것(도리, 이치)을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까닭, 원리)을 알게 할 수는 없다.”

 

子曰 好勇疾貧 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자왈 호용질빈 난야 인이불인 질지이심 난야)

공자가 말하였다.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면 어지러움을 만들고, 사람이 어질지 못한 것을 심하게 싫어하면 어지러움을 만든다.”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인 기여부족관야이)

공자가 말하였다. “주공과 같이 재주가 좋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필요도 없다.”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자왈 삼년학 부지어곡 불이득야)

공자가 말하길 삼년을 공부하고 관직에 뜻을 두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 : 녹봉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자왈 독신호학 수사선도 위방불입)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난방불거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

   邦有道 貧且賤焉恥也(방유도 빈차천언이 치야)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공자가 말하였다.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움을 좋아하고 죽기로 지키면서도 도를 잘해야 한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며 나라에 도가 없으면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子曰 不在其位 不謨其政(자왈 부재기위 불모기정)

공자가 말하길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도모하지 않는다.”

 

子曰 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자왈 사지지시 관저지난 양양호영이재)

공자가 말하길 악관인 가 처음 연주를 하던 <관저>의 마지막 악장()이 아직도 귀에 가득하다.”

 

子曰 狂而不直 侗而不愿 悾悾而不信 吾不知之矣(자왈 광이부직 동이불원 공공이불신 오부지지의)

공자가 말하길 고지식하면서 정직하지 않고, 무지하면서 소박하지 않고, 무능하면서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나는 알지 못하겠다.”

 

子曰 學如不及 猶恐失之(자왈 학여불급 유공실지)

공자가 말하였다. “학문은 따라가지 못할 듯하고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子曰 巍巍乎 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자왈 외외호 순우지유천하야이불여언)

공자가 말하길 높고 크구나. 순임금과 우임금은 천하를 가지고도 그것에 관여하지 않는구나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자왈 대재 요지위군야 외외호 유천위대 유요측지 탕탕호민무능명언)

   巍巍乎其有成功也 煥乎其有文章(외외호기유성공야 환호기유문장)

공자가 말하길 크도다, 요임금의 군주로서 한 것들, 높고 커서 오직 하늘만이 커다란데 오직 요임금만이 그와 같았다. 넓고 넓어 백성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높도다, 거의 업적이여. 빛나도다, 그의 문장(예악과 제도)이여

 

舜 有臣五人而天下治 武王曰 予有亂臣十人(순 유신오인이천하치 무왕왈 여유난신십인)

  孔子曰 才難 不其然乎 唐虞之際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공자왈 재난 불기연호 당우지제어사위성 유부인언 구인이이)

  三分天下 有其二 以服事殷 周之德 其可謂至德也已矣 (삼분천하 유기이 이복사은 주지덕 기가위지덕야이의)

순임금은 (훌륭한) 신하 5명이 있어 천하를 다스렸다. 무왕이 말하길 나는 신하 10사람을 두었다.” 공자가 말하길 인재를 얻는 것은 어렵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요순시대만이 이 때보다 성하였는데 그 중(열사람)에 부인이 있으니 아홉명뿐이다. <周 文王> 천하를 삼분함에 그 둘을 소유하시고도 복종하여 은나라를 섬기셨으니 주(문왕)의 덕은 지극한 덕이라고 이를 만하다.”

* 5: , , (), 皐陶(고요), 伯益

* 10: 周公 旦(주공 단), 召公 奭(소공 석), 太公 望(태공 망), 畢公(필공), 榮公(영공),

太顚(태전), 閎夭(굉요), 散宜生(산의생), 南宮适(남궁괄), 文母(문모, 문왕의 비)

* ()’은 본래 乿() 자이니, () 자의 古字(고자)

* 唐虞之際(당우지제) : 요순시대

 

子曰 禹吾無間然矣 菲飮食而致孝乎鬼神 惡衣服而致美乎黻冕

   (자왈 우오무간연의 비음식이치효호귀신 악의복이치미호불면)

   卑宮室而盡力乎溝洫 禹吾無間然矣(비궁실이진력호구혁 우오무간연의)

공자가 말하였다. “우 임금은 내가 흠잡을 데가 없다. 평소의 음식은 간소하게 하면서도 <제사에는> 귀신에게 효성을 다하였고 평소 의복은 검소하게 하면서도 제사 예복은 화려하게 했다. 자신의 궁실은 누추하게 하면서도 치수사업에는 힘을 기울였다. 우임금은 내가 흠잡을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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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선인의 말씀을 전하지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는 않는다. (선현의 말씀을) 믿고 옛것을 좋아하니 은근히 나를 노팽에 견주어 본다.”

* : 겸손의 표현, 은근히 몰래

* 老彭 : 상나라의 어진 대부. 노자와 팽조 두 사람을 합해서 노팽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음.

 

子曰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자왈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아재)

공자가 말하였다. “묵묵히 기억하고, 배움에 싫증을 내지 않고,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자왈 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사 불선불능개 시오우야)

공자가 말하였다. “(인품)을 기르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지 않고 올바른 것을 듣고도 따르지 않고 나쁜 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을 걱정하는 것이다.”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자지연거 신신여야 요요여야)

공자가 한가로이 있을 때 얼굴이 피고 온화한 표정이었다.

 

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자왈 심의 오쇠야 구의 오불부몽견주공)

공자가 말하였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늙었구나. 내가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자왈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

공자가 말하였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잡아 지키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어라

 * : 六藝(예법, 음악, 활쏘기, 수레몰기, 서예, 수학)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가 말하였다. “집지의 예(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 禮幣를 가지고 가서 경의를 표하던 일)를 행하여 제자로 받아들인 다음에는 내가 직접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束脩 : ()()이고 1=10개이니 포 10개를 가져와서 執贄(집지)의 예를 행한 것을 말함.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자왈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야)

공자가 말하였다. “마음속으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애타지 않고서는 말문을 열지 못한다. 네 귀퉁이 중 하나를 가르쳐 주었는데 남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한다면 다시 가르쳐 주지 않는다.”

* ‘은 알려고 하나 되지 않아 애태우는 것, ‘는 그 앎을 열어주는 것, ‘는 입으로 말하려고 하나 서툴러 애태우는 모양, ‘은 그 말문을 열어주는 것.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子於是日 哭則不歌 (자식어유상자지측 미상포야 자어시일 곡즉불가)

공자님께서는 상가집에서 식사를 하였다면 배불리 먹지 않았고, 이날에 곡을 하였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 有是夫(자위안연왈 용지즉행 사지즉장 유아여이 유시부)

子路曰 子行三軍則誰與 (자로왈 자행삼군즉수여)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자왈 폭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공자가 안연에게 일러 말하길 써주면 (도를) 행하고 물러나면 은둔하는 것은 오직 나와 너에게만 있구나”. 자로가 말하길 공자께서 삼군의 대장으로 행한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 말하길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려 하여 죽어도 후회가 없는 자를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에 임함에 두려워하여(신중하여) 도모하기를 좋아하는 자와 함께 할 것이다.”

* 1= 12,500, 제후국 중 큰 나라는 3을 둔다.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자왈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공자가 말씀하시길 를 구해서 될 수 있다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사람도 나 또한 하겠다. 하지만 구하여도 구할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를 것이다.”

* 군자가 부귀를 싫어하여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억지로 부를 구하여 욕을 먹지 않겠다.

 

子之所愼 齊戰疾 (자지소신 재전질)

공자가 신중한 바는 제사, 전쟁 그리고 질병이었다.

 

子 在齊聞韶 三月 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자 재제문소 삼월 부지육미 왈 불도위락지지어사야)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소(순임금의 음악)를 들으시고 삼개월 동안 고기맛을 잊고 지내시더니 말씀하시길 음악을 만드는데 이러한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冉有曰 夫子 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염유왈 부자 위위군호 자공왈 낙 오장문지)

入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입왈 백이숙제 하인야 왈 고지현인야 왈 원호)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 不爲也 (왈 구인이득인 우하원 출왈 부자 불위야)

염유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나라 임금을 돕겠는가?” 자공이 말하길 좋다. 내가 장차 여쭈어보겠다.” 하였다. 자공이 들어가 말하길 백이와 숙제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공가 답하길 옛날의 현인이다.” 자공이 묻길 후회하였습니까?” 공자가 답하길 인을 구하고자 하여 인을 얻었는데 또 어찌 후회하였겠는가?” 자공이 나와서 말하길 공자께서는 돕지 않으실 것이다.” 하였다.

* 당시 나라 임금出公 輒()이다. 靈公(영공)이 세자인 蒯聵(괴외)를 내쫓았는데, 영공이 죽자, 국인들이 괴외의 아들인 ()을 세웠다. 이때 진나라에서 괴외를 본국에 들여보내자, ()이 그를 막았다. 이때 공자가 위나라에 있었는데, 위나라 사람들은 괴외는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嫡孫(적손)이므로 마땅히 임금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백이와 숙제는 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고죽군은 죽을 때 숙제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숙제가 백이에게 양보하였다. 백이가 아버지의 뜻이라 하고 도망가니, 숙제도 君位(군위)에 오르지 않고 도망갔다. 이에 國人들은 둘째 아들을 군위에 올렸다. 그 뒤에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정벌하니 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잡고 정벌하지 말 것을 간하였는데,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주나라를 떠나 수양산에 숨어 살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사양하다가 도망하였고 정벌을 간하다가 굶주려 죽었으나 끝내 원망과 후회가 없었으니, 공자께서 이것을 어질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위나라 임금(출공)을 돕지 않으실 줄을 안 것이다.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자왈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공자 말하길 거친 밥을 먹고 냉수를 마시며 팔베게를 베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이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못하고 부귀함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

* 먹을(), ()

 

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자왈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

공자가 말하길 “(하늘이) 나에게 목숨을 몇 년을 더 빌려주어 <周易>을 배우게 한다면 큰 허물이 없을 것이다.”

* 논어 이본에는 로 적혀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司馬遷<史記 孔子世家>에 보면 [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와 발음이 유사하여 잘못 적힌 것이고 이때 공자가 이미 70세에 가까웠는데 오십이라고 적혀 있는 것 또한 오기로 보인다.

 

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자소아언 시서집례 개아언야)

공자는 아언을 하였는데 시경과 서경을 말하고 예를 표하는 것 모두 아언이었다.

* 雅言 : 고대 중국의 官話. ‘··의 도읍이 모두 洛陽이나 근처여서 이 지역 말이 아언의 기초가 되었다. 고대에 는 통자로 雅言은 곧 夏言이라고 할 수 있다.

 

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섭공 문공자어자로 자로불대)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자왈 여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낙이망우 부지노지장지운이)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물었는데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너는 어찌 답하지 않았는가? 그의 사람됨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 즐거움에 근심을 잊어서 노년이 장차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 葉公 : 나라 葉縣沈諸梁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

공자가 말하길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안 자가 아니다. 옛것을 공부하기 좋아하고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

 

子不語怪力亂神(자불어괴력란신)

공자는 괴이한 것, 폭력적인 것, 혼란스러운 것, 신비한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자왈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공자가 말하길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중 본받을 만한 자가 있으면 그것을 따르고 본받지 않아야 될 자가 있으면 그것을 고쳐야 한다.”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 其如予何(자왈 천생덕어여 환퇴 기여여하)

공자가 말하길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셨으니 환퇴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 桓魋 : 송나라 司馬向魋(상퇴)를 말하며 桓公에게서 나왔으므로 桓氏라고도 한다.

 

子曰 二三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 不與二三子者 是丘也

(자왈 이삼자 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 오무행이 불여이삼자자 시구야)

공자가 말하길 제자들아 내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나(孔丘)이니라

* 二三子 : 제자가 여럿이 있을 때 부르는 말

 

子以四敎 文行忠信(자이사교 문행충신)

공자는 네 가지를 가르쳤는데 (고전(윤리학(정치학(수사학)이다.

 

子曰 聖人 吾不得而見之矣 得見君子者 斯可矣(자왈 성인 오불득이견지의 득견군자자 사가의)

子曰 善人 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자왈 선인 오불득이견지의 득견유항자 사가의)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難乎有恒矣 (무이위유 허이위영 약이위태 난호유항의)

공자가 말씀하시길 성인을 만날 수 없으면 군자라도 만날 수 있다면 괜찮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선인을 만날 수 없으면 항심이 있는 자라도 만날 수 있다면 괜찮다.”

없으면서 있는 체하며 비었으면서 가득한 체하고 적으면서 많은 체하면 항심이 있기 어려울 것이다.

* 없다라는 뜻으로 쓰일 땐 라고 읽는다. (=)

 

子 釣而不網 弋不射宿(자 조이불강 익불석숙)

공자는 낚시질을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았고 주살질은 하되 자는 새는 잡지 않으셨다.

* 주살(), 주살 : 화살에 가느다란 끈이 달려 있는 것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자왈 개유부지이작지자 아무시야 다문 택기선자이종지 다견이지지 지지차야)

공자가 말하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행동하는 자가 있는가? 나는 아니다.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선한 것을 가려서 그것을 따르고 많이 보고서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는 것 다음이 된다.”

* 기억하다의 의미일 때는 ()로 읽는다.

 

互鄕 難與言 童子見 門人惑(호향 난여언 동자현 문인혹)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자왈 여기진야 불여기퇴야 유하심)

人潔己以進與其潔也 不保其往也(인결기이진여기결야 불보기왕야)

호향 사람과는 더불어 말하기 어려웠는데 (호향의) 동자가 (공자를 찾아와) 뵈니 제자들이 당혹해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나는 그의 진보에 함께하고 퇴보와 함께하지 않는다. 어찌 심하게 대하겠느냐? 사람이 자신을 청결히 하고 나아가면 그 청결함과 함께하는 것이지 그의 과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자왈 인원호재 아욕인 사인지의)

공자 말씀하시길 인이 멀리 있단 말인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인은 나에게로 온다.”

 

陳司敗問 昭公 知禮乎 孔子曰 知禮(진사패문 소공 지례호 공자왈 지례)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曰 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공자퇴 읍무마기이진지왈 오문군자불당 군자역당호)

君取於吳 爲同姓 謂之吳孟子(군취어오 위동성 위지오맹자)

君而知禮 孰不知禮 巫馬期以告(군이지례 숙불지례 무마기이고)

子曰 丘也 幸 苟有過 人必知之(자왈 구야 행 구유과 인필지지)

진나라 사패가 소공은 예를 알았습니까?” 묻자 공자 말하길 예를 아셨다.” 하였다. 공자께서 물러나자 사패가 무마기에게 읍을 하고 그를 나오게 하고서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편들지 않는다 들었는데 군자 역시 편을 듭니까? 노나라 소공은 오나라에서 부인을 맞이하였는데 두 나라는 성이 같아서 (그 부인을) 오맹자라고 불렀으니 이러한 임금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르겠는가?” 무마기가 이것을 아뢰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나는 다행이다. 만일 잘못이 있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아는구나

* 司敗는 관직명이니 곧 司寇이다.

* 巫馬는 성이고 는 자이고 이름은 로 공자의 제자이다.

* 서로 도와 나쁜 짓을 숨겨주는 것을 이라 한다.

* 동성간에는 결혼하지 않는데 노나라와 오나라는 모두 姬姓으로 노나라 소공이 동성인 희씨를 아내로 맞이하여 원래는 맹희라고 불러야 하나 오맹자(오나라의 장녀)라고 불렀다.

 

子與人歌而善 必使反之 而後和之(자여인가이선 필사반지 이후화지)

공자는 다른 사람과 노래를 부를 적에 잘하거든 반드시 반복해서 부르게 하시고 그 뒤에 따라 부르셨다.

 

子曰 文莫吾猶人也 躬行君子則 吾未之有得(자왈 문막오유인야 궁행군자즉 오미지유득)

공자가 말씀하였다. “은 내가 남과 같지 않겠는가? 군자의 도를 몸소 행함은 나는 아직 얻음이 있지 않다.”

 

子曰 若聖與仁則 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則 可謂云爾已矣

(자왈 약성여인즉 오개감 억위지불염 회인불권즉 가위운이이의)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공서화왈 정유제자불능학야)

공자가 말씀하시길 만약 聖人仁者로 말한다면 내가 어찌 감히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였다. 공서화가 말하길 바로 제자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

* 公西華 : 공자의 제자로 公西赤(공서적)이라고도 한다.

 

子疾病 子路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 誄曰 禱爾于上下神祇 子曰 丘之禱久矣

(자질병 자로청도 자왈 유저 자로대왈 유지 뇌왈 도이우상하신기 자왈 구지도구의)

공자가 병이 들자 자로가 기도할 것을 청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선례가 있느냐?” 자로가 답하여 말하길 있습니다. 기도문에 이르기를 천신과 지신에게 너를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나는 기도한 지가 오래되었다.” 하였다.

* () : 죽은 이를 애도하여 그의 행실을 적은 글(기도문)

* 上下 : 하늘과 땅

* () : 하늘의 신, () : 땅의 신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자왈 사즉불손 검즉고 여기불손야 영고)

공자가 말하길 사치하면서 오만하기도 하고 검소하나 고루하기도 하나 오만한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 =,

 

子曰 君子 坦蕩蕩 小人 長戚戚(자왈 군자 탄탕탕 소인 장척척)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마음이 평온하고 너그러우며 소인은 걱정이 많다.”

 

子 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자 온이려 위이불맹 공이안)

공자께서는 온화하면서 엄숙하시며 위엄이 있으면서 사납지 않으시고 공손하면서도 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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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990년대 말에 봤던 글이다. 딴지일보였던 것 같은데 하여간 다들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글인데 오랫만에 생각이 나서 찾아서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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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그동안 일제가 유포한 식민사관과 체계적인지 못한 비과학적 고증으로 뒤틀렸던 각종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올곧게 하고 겨레의 자긍심을 복원케 하는 과업을 수행해 왔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본지가 그동안 규명해낸 역사의 실체들은 앞으로 영원히 인류의 문화적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간 본지의 압도적인 연구활동을 망연자실 지켜보며, 그 탁월한 고증능력에는 도저히 범접조차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엄청난 자괴감에 괴로워 했을 국내사학계에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바이다. 본지가 워낙 군계일학의 발군이라서 그런 거지 사학계 너거뜰이 못 나서 그런 것은 아니니 힘들 내시기 바란다. 그러고 보니, 본지는 참 못하는 것도 없다.
최근 본지는 세계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메가톤급 발굴을 또 한 건 올려 이에 독자제위께 포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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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한 이태리 태생 모험가의 미대륙 발견은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던 서반구와 동반구가 최초로 조우함으로써 미대륙이 세계사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수 백년을 이어가는 유럽 세계팽창의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모험가는 바로 크리스토퍼 콜롬부스.
그는 당대 일반인식과는 다르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대서양 서쪽으로 항해하면 반드시 인도에 닿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결국, 1492년 8월 3일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출발, 70여 일의 항해 끝에 마침내 지금의 카리브 연안에 도착하게 된다. 그 후 총 4차례 미대륙을 왕래했으나,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이 새로운 대륙이 아니라 아시아의 어디쯤이라고 믿었다 한다.
 
그런데...
 
그가 죽을 때까지 그곳이 아시아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지리정보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그가 미대륙에서 만났던 어떤 한 사람 때문이었으며, 또한 그에 의해 이미 미대륙은 발견되었고, 콜롬부스라는 이름 역시 사실은 그 사람이 지어준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본지 역사고증팀이 스페인 왕립도서관에서 발굴한 한 고문서로 인해 밝혀졌다.
 
콜롬부스 초상화에도 등장하는 이 고문서는 바로...
 
" 박규표류기 " (朴規漂流記)
 
박규라는 한 조선인이 미대륙까지의 표류상황과 그 후 정황을 담담하면서도 유려한 필체의 서사시로 기술한 이 문서는 우리 선조들의 불굴의 모험심과 웅대한 기개를 확인케 하고 있다.
 
본지 자료실에 보관 중인, 조선 9대왕 성종(1469-1494)때 집현전에서 발간한, 당시의 사건기록을 담은 희귀도서인 "사건과실화(事件過悉禍)" 맨 마지막 장에 있는 "행불자 명단"에서도 박규는 실존 인물로 확인 되고 있다.
 
" 함경지방의 수군에서 큰 활약을 하던 박규 라는 장군이 있었으니, 평소 더 먼 바다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하던 차에, 성종 14년(1482)에 혼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나아갔으나 그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 "
 
이 표류기에 따르면, 태평양에서 표류하며 물고기와 빗물로 연명하던 박규 장군은 80일이 되던 어느날 새벽 드디어 뭍에 닿게 된다. 홀홀단신으로 미지의 대륙에 도착해 황망한 중에도 박규 장군은 한 편의 시조로 그 감흥을 읊어내는 풍류정신을 잃지 않았다. <박규표류기>에는 이 도착의 감동과 출정의 각오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아매리가로 我昧離歌路
양기고흠 洋氣高欽
고리아타운은 孤離我舵運銀
로수안절래수 怒水按折來搜
 
나는 새벽에 길을 떠나며 이 노래를 읊네 
큰 바다에 서려있는 기운을 높이 흠모하던 차에
외롭게 떠나온 길, 나 홀로 은빛 키를 잡으며
성난 물을 누르고 끊으며... 찾아왔네
 
이후 박규 장군의 영도력에 복속하게 되는 원주민들은 이 시를 기리기 위해, 그 땅을 < 아매리가 >라 칭하고, 박규 장군이 최초 도착했던 지역을  <로수안절래수>라 불렀다 한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아메리카로 떠나라!>는 뜻의 의 어원 역시 이 시조 되겠다.
 
무장으로서 훤칠한 키에 기골이 장대하면서도 이렇듯 안빈낙도의 여유와 풍류마저 갖춘 박규 장군을 현지 원주민 처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모했다 한다. 그 역시 외로움을 오로지 달달리만으로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현지 원주민 처녀들과의 애틋한 사랑을 다소 애로틱한 한 편의 시로 기록해 놓기도 했다.
 
기수마이애수 (氣壽馬怡愛水)
애수홀애수홀 (愛水惚愛水惚)
 
말과 같이 생명의 기운이 솟구치니 기쁜 사랑의 물이 나는구나
황홀한 사랑의 물이여, 황홀한 사랑의 물이여..
 
박규 장군은 비록 그들이 사대부집안의 규수들이 아니라 족보도 없는 원주민 처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자식들에게 모두 호부호형을 허하였으니, 그 계급타파의지와 사해동포정신은 칭송 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이 자식들은 박규 장군의 함경도 사투리를 따라 박규 장군을 <아바쥐>로 호하였으니, 미대륙 역사상 가장 용맹한 부족이었던 <아파치>부족은 바로 그렇게 태동하게 된다.
 
이 시조를 사랑의 주문으로 이해한 인디언들 사이에서, 이 시조는 상대를 유혹할 때 무릎을 꿇고 <기수마이애수>라고 읊조리는 구애의 상용구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때 여자는 새침떼게 등을 돌리고 있다가 애수홀, 애수홀 하고 화답하는 것으로 사랑을 허락했다.
 
훗날 이렇게 남자가 무릎 꿇고 여자가 등을 돌리고 있는 인디언들의 구애행위를 멀리서 목격한 무식하고 미개한 양넘들은 남자가 엉덩이에 키스했더니 여자가 거기가 아니구 정확하게 똥구녕에 해줘.. 하고 화답한 것으로 오인해 만들어진 말이 바로 < kiss my ass >와 < ass hole > 되겠다.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렇듯 당당하고 올곧은 기개를 가진 박규 장군을 너나 할 것 없이 추종하게 되었고, 박규 장군은 오래지 않아 수만 필 이상의 말과 수 천의 처자를 거느리며 미대륙을 호령하게 되니, 이들 원주민 인디언들은 수만 필의 말을 소유한 박규 장군을 숭상하여 그를 " 말을 많이 소유한 박씨 성을 가진 위인" 이라 하여 마다박가(馬多朴家)라 불렀다. 훗날 서구 이주민들은 박규장군의 영도력을 시샘하며 혼자 모든 재물을 차지하려는 위인이란 뜻으로 폄하하여 마다박가(馬多朴家)를 썼으니 < mother fucker >의 어원 되겠다.
 
박 규 장군은 온화하고 기품 있었으나 장군 출신으로 기강을 위해 상벌체계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던 터, <박규표류기>에 따르면 그는 죄를 지은 자를 조선시대의 형법에 따라서 처벌하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정해진 형벌을 내리고도 그 죄값을 치루기에 부족할 때 집행관의 판단에 따라 내려지는 가중처벌이 있었으니 죄인을 묶어놓고 후장을 발로 걷어차는 형벌이었다. "발을 더하라!" 구령에 따라 행해졌기에 이를 "족가"(足加)라 불렀다. 죄인에게 "족가지마"형벌을 내리며 가운데 손가락을 위엄있게 치켜들고 있는 박규 장군 늠름한 모습 
 
국왕능멸이나 모반을 꾀한 자들에게는 위의 "족가형"보다 더한 형벌을 내렸으니, 이 형벌은 다섯 손가락 중에 으뜸으로 긴 가운데 손가락을 죄인의 후장에 대고 다른 이가 이를 발로 차서 어퍼컷을 먹이는 끔직한 형벌이었다 한다.
"손가락에 발을 더하여 마비까지 이르게 되다"라 하여 이를 "족가지마(足加指痲)"라고 불렀다 한다.
이 형벌을 당한 자는 똥꼬확장증에 시달리며 장기간 사회부적응 상태가 되어 사회복귀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에 그 참상이 끔직하다 하여 15대 광해군때 이르러 전면폐지되었으나, 민간에서는 끊임없이 전래되어 현재의 국민스포츠인 똥침으로 정착되었다.
 
그 이후 "족가" 와 "족가지마" 는 큰 잘못을 하고도 뉘우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한 표현으로 정착되었고, 이것이 양넘들에게 전파되어 상대를 위협하고자 할 때, 박규 장군이 두렵지도 않냐는 뜻으로 박규 장군의 이름을 높이 외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휘두르는 < fuck you>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게 박규 장군의 영도아래 평화롭기만 하던, 어느 날... 
동부 해안의 인디언들에게서 봉화신호가 날아온다. 동부 해안에 상륙하는 희멀건하게 생긴 바짝 마른 놈 하나를 포박해 두었으니 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지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박규 장군은 친히 심문하러 달려가, 굶고 지쳐 피골이 상접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못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짝달만한 그 사람을 보고 나직하게 이렇게 읊조렸다 한다.
 
거리수토부 골음부수 ( 距離數吐芙 骨陰夫帥 )
조온마난색기(朝溫麻煖色氣)
 
먼 길 오며 수차 토하여 연꽃처럼 약하고 피골이 음하게 된 남자로구나
아침마다 온수로 목욕시키고 삼으로 따뜻한 옷을 지어주어 얼굴색이 기운을 차리게 하라..
 
박규 장군의 하해와 같은 은총에 감복한 이 희멀건 남자는 엎드려 눈물로 감사드리니, 이를 지켜본 인디언들은 그 남자를 <거리수토부 골음부수>라 불렀고 그 역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죽을 때까지 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취했으며, 인디언들은 <골음부수>처럼 키가 작고 상황파악 못하는 사람을 보면 <조온마난색기>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토록 큰 은혜를 입고 건강을 회복한 <골음부수>는 고국에 대한 향수와 공명심에 그만 눈이 어두워져 자신의 은인 박규 장군을 배반하기에 이른다. 이 신비의 미대륙을 자신이 발견한 것인양 하여 영웅이 되고 싶은 욕심에 대서사시 <박규표류기>를 훔쳐 야심한 밤에 도주하게 된 것이다.
이를 보고 받은 박규 장군은 가고 싶다면 언제든 보내 줄 것이라 약속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야반도주한 <골음부수>를 한탄하며, 자연과 벗하며 결코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어부나 되어 살지 않고선... 이라며 자신의 무위자연사상을 담아 이렇게 안타깝게 일갈한다.
 
애이시불노무색기(哀離時不怒無索期)
선어부비취 (先漁夫非取)
 
아 슬프도다. 떠날 때가 되면 화내지않고 찾지도 않을거라 기약했건만
먼저 어부가 되어 아무 것도 취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 후 인디언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배신을 때리는 인간을 지칭할 때, <선어부비취>라 불렀으며, 이것이 양념들에게 전파되어 < son of bitch >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박규 장군 행적은 <박규표류기>가 도난 당해 더 이상 기록이 없다. 그러나, 세계사에 따르면 <골음부수>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영웅이 되었지만, 박규 장군의 웅대한 기개와 아량을 잊지 못하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배반한 죄책감으로 인해 심히 괴로워 하다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길 3차례나 더하였으나 끝내 원래 그 곳을 찾지 못한 체 어떤 섬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우리 선조 박규 장군이 터를 닦고 기반을 마련해놓은 속국에 더부살이로 살기 시작했고,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일상어조차 박규 장군의 유려한 시어들에서 빌어 온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미국 노무 쉐이들이 최근 들어 그 역사를 망각하고 감히 어른의 나라에서 폭탄을 아무데나 떨어뜨리지를 않나 물에 독극물을 뿌려대지 않나, 겨우 한국의 속국이었던 미국이 이 지랄을 하는 데도 모가지 힘도 한 번 제대로 못 주고 질질 끌려 다니는 정부는 하늘에 계신 박규 장군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미국넘들도 애시당초 지들이 얻을 것이 있어 이 땅에 있는 바, 우리가 얻을 것이 있으면 당당히 얻고, 주장할 것이 있으면 당당히 주장하여야 하는 법이거늘, 언론이라고 하는 것들도 제대로 항의와 주장 한 번 해보기도 전에 미리부터 '이 사태가 반미감정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느니 지레 꼬리를 말아버리는 빙신 같은 작태를 목도한 본 역사고증팀은 미국넘들이 대구리 숙이고 정식으로 사죄할 때까지 박규 장군의 이름을 높히 외치며 족가지마의 형벌을 연속 콤비블로우로 미국넘들에게 내릴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박규!     박규!     양기고흠!     양기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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