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자왈 이인위미 택불처인 언득지)

  공자왈 인심 좋은 마을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인심 좋은 곳을 찾아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리오?” 하였다.

 

子曰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자왈 불인자 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안인 지자리인)

  공자왈 어질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곤궁에 처할 수 없고 오랫동안 즐거움에 처할 수 없다. 어진 사람은 인을 편안하게 여겨서 그것을 실행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겨서 그것을 실행한다.” (어진사람만이 安貧樂道 할 수 있다)

 

子曰 有仁者 能好人 能惡人(자왈 유인자 능호인 능악인)

  공자왈 어진 사람만이 (좋은) 사람을 좋아하고 (나쁜)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하였다.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자왈 구지어인의 무악야)

  공자가 말씀하시길 진실로 어짐에 뜻을 둔다면 악한 일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자왈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득지 불처야)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득지 불거야)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 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군자거인 오호성명 군자무종 식지간위인 조차필어시 전패필어시)

  공자가 말씀하였다. “부귀는 누구나 바라는 것이나 정당하게 얻은 것이아니면 머물지 않으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정상적으로 얻지 않았더라도 버리지 않는다. 군자가 어짐을 없애면 어찌 (군자라는)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 먹는 동안에도 어짐을 벗어남이 없으니 구차한 때에도 반드시 어짐이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어짐이 있어야 한다.”

 

子曰 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 好仁者 無以尙之 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 加乎其身

  (자왈 아미견호인자 오불인자 호인자 무이상지 오불인자 기위인의 불사불인자 가호기신)

  有能一日 用其力於仁矣乎 我未見力不足者 蓋有之矣 我未之見也

  (유능일일 용기력어인의호 아미견역부족자 개유지의 아미지견야)

  공자 말하길 나는 아직 인을 좋아하는 자와 불인을 미워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인을 좋아하는 자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불인을 미워하는 자는 그가 인을 행할 적에 불인한 것으로 하여금 자기 몸에 가해지지 못하게 한다. 하루라도 그 힘을 인에 쓴 자가 있는가? 나는 (이렇게 하고서) 힘이 부족한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자왈 인지과야 각어기당 관과 사지인의)

  공자가 말하길 사람의 허물은 각각 그 부류가 있다. 그 허물을 살펴보면 그 어짐을 알 수 있다.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자왈 조문도 석사가의)

  공자가 말하길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자왈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

  공자왈 선비가 진리에 뜻을 두고서도 거침 음식과 허름한 옷을 부끄러워한다면 충분히 함께 의논할 만하지 못하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자왈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세상에 있어서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없고 의로운 것에 따를 뿐이다.”

 

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자왈 군자회덕 소인회토 군자회형 소인회혜)

  공자 말하길 군자(위정자)가 덕을 마음에 품으면 소인(백성)은 땅을 마음에 품고 군자가 형벌을 마음에 품으면 소인은 은혜(은혜로운 곳)를 마음에 품는다.”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자왈 방어리이행 다원)

  공자가 말하길 이익만을 따라 행사면 원망이 많아진다.”

 

子曰 能以禮讓 爲國乎何有 不能以禮讓 爲國 如禮何 (자왈 능이예양 위국호하유 불능이예양 위국 여예하)

  공자가 말하길 예와 겸양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을 것인가, 예와 겸양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면 예 같은 것은 어디에 쓰겠는가?”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자왈 불환무위 환소이립 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

  공자가 말하길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지위를 맡을 자질이 없음을 근심하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子曰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唯 子出 門人問曰何謂也 曾子曰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자왈삼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유 자출 문인문왈하위야 증자왈부자지도 충서이이의)

  공자가 말씀하였다. “증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증자(증삼)가 말하였다. “공자가 나가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성과 용서일 뿐입니다.”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자왈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

  공자 말하길 군자는 의에 민감하고 소인은 이익에 민감하다.”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자왈 견현사제언 견불현이내자성야)

  공자 말하길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않은 이를 보면 안으로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子曰 思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자왈 사부모 기간 견지부종 우경불위 노이불원)

  공자가 말하길 부모를 섬김은 간함은 완곡히 하고 내 뜻을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또한 공경하고 거스르지 말며 힘들더라도 원망하지 말아라.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자왈 부모재 불원유 유필유방)

  공자가 말하였다. “부모가 계시면 먼 곳에 가지 말고 먼 곳에 가면 반드시 방향을 밝혀라.”

 

子曰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자왈 삼년 무개어부지도 가위효의)

  공자가 말하길 삼 년 동안 아비의 도를 고치지 않으면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다.”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자왈 부모지년 불가부지야 일즉이희 일즉이구)

  공자왈 "부모님의 나이를 몰라서는 안된다. 한편으로 (오래 사시니) 기쁘고 한편으로 (늙어가시니) 두렵기 때문이다."

 

子曰 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자왈 고자 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

  공자가 말하길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내지 않는다하였는데 실천이 말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이다.”

 

子曰 以約失之者 鮮矣(자왈 이약실지자 선의)

  공자가 말하길 절제함으로써 잃는 사람은 드물다.”

 

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자왈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말을 적게하고 행동에는 민첩하다.”

 

子曰 德不孤 必有隣(자왈 덕불고 필유린)

  공자가 말하길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子遊曰 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자유왈 사군삭 사욕의 붕우삭 사소의)

  자유가 말하길 임금을 섬김에 (간언이) 잦으면 곤욕을 당하고 친구간에 (충고가)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

  * () : 잦다. 빈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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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위계씨 팔일무어정 시가인야 숙불가인야)

  공자가 계씨에 대해 말하였다. 팔일무를 뜰에서 추게 하니 이것을 참는다면 무엇인들 참지 못하겠는가? (천자가 아닌 대부인 계씨가 천자만 행할 수 있는 팔일무를 추게 한 것에 대한 비판)

 * 당시 예법은 천자 八佾舞(8×8=64), 제후 六佾舞(6×6=36), 대부 四佾舞(4×4=16) 이었음.

 

三家者以雍(삼가자이옹철) 子曰(자왈) 相維辟公 天子穆穆(상유벽공 천자목목)

  奚取於三家之堂(해취어삼가지당)

  세 대부의 집에서 천자의 제례인 으로써 마치니 공자가 말하길 “‘제후를 돕는 사람이 제후들이요 천자의 태도는 공손하다라는 노래를 하니 어찌 세 대부의 집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이냐하였다.

 * 三家 : 당시 대부인 孟孫氏, 叔孫氏, 季孫氏

 * <雍> : 詩經 周頌의 편명인 <()>을 가리킴, 천자가 종묘에서 제사를 마치고 <>을 연주했다.

 * 相維辟公 天子穆穆 : <>의 제3·4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자왈 인이불인 여예하 인이불인 여악하)

  공자가 말하길 사람이 어질지 않은데 예는 배워서 무엇하랴?  사람이 어질지 않은데 음악은 배워서 무엇하랴?” 하였다.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問(임방 문예지본 자왈 대재문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예여기사야 영검 상여기이야 영척)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묻자 공자 말하길 크도다 질문이여! 예는 사치하기보다 차라리 검소한 것이고 상례는 (장례식을)잘 치르는 것보다 차라리 슬픔에 젖는 것이 낫다.” 하였다.

 * () : 다스리다, 돌보다. 여기서는 장례식을 차질 없이 치르는 것을 말함.

 

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자왈 이적지유군 불여제하지무야)

  공자 말하길 오랑캐에 군주가 있는 것은 중원 여러 나라에서 군주가 없는 것과 다르다.”

 * 중원사람들이 주변지역을 폄하해서 부르는 말. 東夷 西戎 南蠻 北狄

 * 없다(無)라는 뜻으로 쓰일 때 亡(망) ‘무’로 읽힌다.

 

季氏 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계씨 여어태산 자위염유왈 여불능구여 대왈 불능)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자왈 오호 증위태산 불여임방호)

  계씨가 태산에서 여제(산신제)를 지냈다. 공자가 염유에게 네가 왜 구하지 못했는가?’일러 말하니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아아! 일찍이 태산은 임방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 군자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군자)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겨룸이 없으니 (한다면) 반드시 활쏘기로 한다. 정중히 예를 다하고 활을 쏘러 오르며 끝나서는 (술을) 마신다. 이러한 것이 군자의 겨룸이다.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자하문왈 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이위현혜 하위야)

 子曰 繪事 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왈 회사 후소 왈 예후호 자왈 기여자 상야 시가여언시이의)

  자하가 귀엽게 웃는 모습이 예쁘구나! 아름다운 두 눈이 초롱초롱하구나! 흰 바탕에 문채를 지었구나! 하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먼저 마련해 놓고 난 뒤에 한다는 말이다.” 하셨다. 자하가 예가 나중이라는 것입니까?” 하자, 공자가 말하길 나를 일깨워주는 사람은 상이로구나. 비로소 그와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 巧笑倩兮 美目盼兮 : 美人(미인)을 형용하는 () 구절. 출전 詩經(시경) 衛風(위풍) 碩人篇(석인편) 2장 제6·7

 

子曰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자왈 하례 오능언지 기부족징야 은례 오능언지 송부족징야)

  文獻 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문헌 부족고야 족즉오능징지의)

  공자가 말하길 하나라의 예법은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하나라의 후예인> 기나라에서 충분히 증명하지 못하며, 은나라의 예법은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은나라의 후예인> 송나라에서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다.”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자왈 체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

  공자가 말하길 체 제사는 울창주(鬱鬯酒)를 따라 降神한 뒤부터 나는 보고 싶지 않다.”

 * () : 제사하는 초기에 울창주를 땅에 부어 신을 강림하게 하는 것

 

或 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혹 문체지설 자왈 부지야 지기설자지어천하야.)

  其如示諸斯乎 指其掌(기여시저사호 지기장)

  어떤이가 체 제사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니 공자는 모른다고 하였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천하를 여기에 올려놓고 보는 것과 같다.” 하시고 그 손바닥을 가리켰다.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제여재 제신여신재 자왈 오불여제 여불제)

  제사를 지냄에 (조상이) 계신듯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냄에 신이 계신듯하다.

  공자는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爲也(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영미어조 하위야)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자왈 불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에(앉아 있는 어른) 아첨하기보다 차라리 부뚜막에(일하는 사람) 아첨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공자 말하길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

  공자 말하길 주나라는 ·이대를 본받았으니 그 문화가 찬란하다. 나는 주나라를 따를 것이다.”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鄒人之子知禮乎(자입태묘 매사문 혹왈 숙위추인지자지례호)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입태묘 매사문 자문지왈 시례야)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 제사를 도울 때 일일이 물었다. 어떤 이가 누가 추나라 출신의 자식이 예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는가? 태묘에 들어가서 일일이 묻는구나.” 말하였다. 공자가 그것을 듣고 이렇게 하는 것이 예이다하였다.

 * 鄒人 :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을 말함. 의 대부를 지냈고 태어난 곳도 鄒邑.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자왈 사부주피 위력부동과 고지도야)

  공자가 말하길 활쏘기가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을 주로 하지 않음은 (사람마다) 힘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 옛 활쏘기의 도리이다.”

 

子貢 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공 욕거고삭지희양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예)

  자공이 매월 초하루 제사에 양을 바치는 것을 없애려고 하자, 공자가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는구나, 나는 그 예를 아낀다.” 하였다.

 

子曰 事君盡禮 人 以爲諂也(자왈 사군진례 인 이위첨야)

  공자가 말하길 임금 섬기는 예를 다하는데 사람들이 아첨한다고 여기는구나

 

定公問 君事臣 臣事君 如之何(정공문 군사신 신사군 여지하)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공자대왈 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

  ()정공이 임금은 신하를 어떻게 대하고 신하는 임금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길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대하고 신하는 임금을 충으로써 대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자왈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공자가 말하길 시경의 <관저>편에서 즐겁되 음란하지 않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는데 이르지는 않는다.” 하였다.

 

哀公 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 以松 殷人 以栢 周人 以栗 曰 使民戰栗

  (애공 문사어재아 재아대왈 하후씨 이송 은인 이백 주인 이율 왈 사민전율)

  子聞之 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자문지 왈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

  ()애공이 재아에게 에 대하여 물었다. 재아가 답하길 하나라는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를 심었고 주나라 사람은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백성들을 두려워하게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나무를 심어 神主로 사용했다.) 공자가 그것을 듣고 말하되 이미 끝난 일을 들추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충고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지나간 일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 夏后氏 : 나라의 다른 이름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 儉乎(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 검호)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然則管仲 知禮乎 曰 邦君 樹塞門(연즉관중 지례호 왈 방군 수색문)

   管氏亦樹塞門 邦君 爲兩君之好 有反坫(관씨역수색문 방군 위양군지호 유반점)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관씨역유반점 관씨이지례 숙불지례)

   공자 말하길 관중의 그릇이 작구나어떤이가 관중이 검소하다는 것입니까?” 물었다. 답하길 관중은 삼귀를 두었으며 가신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아는 사람입니까?” 묻자, 공자 답하길 나라의 임금이어야 나무틀로 문을 가리는데 관중도 역시 나무틀로 문을 가렸으며 임금이어야 두 임금이 우호로 만날 때 반점(反坫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을 두는데 관중도 반점을 두었으니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르겠는가?” 하였다.

 * 三歸(삼귀)’()의 이름이니, 이에 대한 일이 說苑(설원)에 보인다.

 

子語魯大師樂曰 樂 其可知也 始作 翕如也.(자어노대사악왈 악 기가지야 시작 흡여야.)

  從之 純如也 曒如也 繹如也 以成(종지 순여야 교여야 역여야 이성)

  공자가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을 말하길 음악은 알 수 있으니 시작하면 음을 합하고 풀어놓고 조화를 이루며 분명하며 연속되어서 한 장을 끝내야 한다.”

 * 太師 : 樂官의 명칭

 

儀封人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의봉인 청현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불득현야)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종자현지 출왈 이삼자 하환어상호)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 爲木鐸(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 위목탁)

  의(儀邑)땅의 봉인(국경을 관장하는 관원)이 뵙기를 청하며 군자가 이곳에 오시면 나는 일찍이 만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자 종자(공자의 수행원)가 뵙게 해주자 나와 말하길 당신들은 어찌 (벼슬) 잃음을 걱정하는가? 천하의 도가 없음이 오래되었는데 하늘이 장차 공자로 하여금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하였다.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공자가 소악(韶樂)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좋다.” 하시고 무악(武樂)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않다.” 하셨다.

 * : 임금의 음악,  : 周 武王의 음악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자왈 거상불관 위례불경 임상불애 오하이관지재)

  공자가 말씀하시길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으며 예를 행하되 공손하지 않고 상례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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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爲政以德(위정이덕) 譬如北辰居其所(비여북진거기소) 而衆星共之(이중성공지)

  공자가 말씀하시길 정치는 덕으로써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극성이 그 자리를 잡으면 별무리들이 북극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

  공자왈 시삼백편을 한마디 말로 한다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라 하셨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공자왈 정치권력으로써 백성을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벗어나고자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써 백성을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또한 격식을 차린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삼십이립)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왈 내가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뜻을 세웠고 사십에는 미혹함이 없었고 오십에 천명을 알았으며 육십에는 듣는 것이 모두 이해가 되었으며 칠십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孟懿子問孝(맹의자문효) 子曰(자왈) 無違(무위) 樊遲御(번지어) 子告之曰(자고지왈)

  孟孫問孝於我(맹손문효어아) 我對曰(아대왈) 無違(무위) 樊遲曰(번지왈) 何謂也(하위야)

  子曰(자왈) 生事之以禮(생사지이례) 死葬之以禮(사장지이례) 祭之以禮(제지이례)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물으니 공자 말씀하시길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번지가 공자의 수레를 몰고 있는데 공자가 그에게 말하길 맹손이 나에게 효에 대해 물었다. 내가 답하길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하였다.” 번지가 말하길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자가 말하길 부모님 살아계실 때 예를 다해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를 다해 장사를 지내고 제사를 지낼 때도 예를 다하라

 

孟武伯 問孝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맹무백 문효 자왈 부모 유기질지우)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으니 공자 말하길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만을 근심한다.”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에 대해 물으니 공자 말하길 요즘의 효는 봉양하는 것만을 말하는데 개나 말도 모두 봉양할 수 있으니 공경하는 것이 없다면 어찌 구별할 수 있겠는가?”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문효 자왈 색난 유사 제자복기노 유주식 선생찬 증시이위효호)

  자하가 효에 대해 물으니 공자 말하길 얼굴빛을 환하게 함은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젊은이가 그 수고를 하고 술과 음식이 생기면 연장자에게 대접하는 것을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子曰 吾與回 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자왈 오여회 언종일 불위여우 퇴이성기사 역족이발 회야불우)

  공자가 말씀하시길 내가 안회와 함께 종일토록 말을 하는데 내 말에 다른 의견이 없어 어리석은 것인가 하였는데 돌아간 뒤 그의 사사로운 생활을 보니 역시 내가 말한 대로 충분히 행동하고 있으니 안회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하였다.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瘦哉 人焉瘦哉 (자왈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가 말씀하시길 그 사람의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따르는 바를 보며 그 사람이 무엇에서 편안하게 느끼는 바를 살펴본다면 사람들이 어찌 감출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어찌 감출 수 있겠는가?” 하였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가 말씀하시길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 하였다.

 

子曰 君子 不器(자왈 군자 불기)

  공자왈 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제한된 곳에서만 쓰여서는 안된다.)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而後從之(자공문군자 자왈 선행기언이후종지)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물으니 공자 말하길 먼저 행하고 말은 뒤에 따르게 하라하였다.

 

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자왈 군자 주이불비 소인 비이불주)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원만하고 비교하지 않고 소인은 비교하고 원만하지 못한 것이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가 말하길 배우고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갖혀 있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하였다.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자왈 공호이단 사해야이)

  공자가 말하길 이단을 공부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之 是知也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공자가 말씀하시길 유(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다는 것이다.

 

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자장학간록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즉과우)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다견궐태 신행기여즉과회)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언과우 행과회 녹재기중의)

  자장이 녹봉 구하는 것을 배우고자 하니 공자 말씀하시길 많이 들어서 의심을 버리고 그 남은 것을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으며 많이 보아서 위태로움을 버리고 그 남은 것을 삼가서 행사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으면 행함에 뉘우침이 적으면 녹봉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하였다.

 

哀公問曰(애공문왈) 何爲則民服(하위즉민복) 孔子對曰(공자대왈)

  擧直錯諸枉 則民服(거직착저왕 즉민복) 擧枉錯諸直 則民不服(거왕착저직 즉민불복)

  애공이 물기를 어찌하면 백성이 복종하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올바른 사람을 등용해서 굽은 사람을 바로잡으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굽은 사람을 등용해서 곧은 사람 위에 쓰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季康子問(계강자문) 使民敬忠以勸 如之何(사민경충이권 여지하)

  子曰(자왈) 臨之以莊則敬(임지이장즉경) 孝慈則忠(효자즉충) 擧善而敎不能則勸(거선이교불능즉권)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길 군주가 백성을 정중하게 대하면 윗사람을 공경할 것이고 군주가 효도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면 백성들이 충성할 것이요 올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능력이 없는 자를 교화하면 백성들이 권면할 것이다.”

 

或謂孔子曰(혹위공자왈) 子奚不爲政(자해불위정)

  子曰(자왈) 書云(서운)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효호 유효 우우형제 시어유정)

  是亦爲政(시역위정) 奚其爲爲政(해기위위정)

  어떤이가 공자께 물었다. “당신은 어찌 정치를 하지 않습니까?” 공자 말하길 서경에 효에 대해 이르길 부모에 효성스럽고 형제간 우애가 있으면 정치에 보탬이 된다고 하니 이렇게 하는 것도 정치를 하는 것인데 어찌 (관직에 나아가) 정치를 하는 것만 정치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하였다.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자왈 인이무신부지기가야)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신의가 없다면 그가 할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큰 수레의 끌채가 없고 작은 수레의 끌채가 없으면 어찌 수레를 운행할 수 있겠는가?”

 

子張問 十世 可知也(자장문 십세 가지야)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자왈 은인어하례 소손익 가지야)

   周因於殷禮 所損益 可知也(주인어은례 소손익 가지야) 其或繼周者 雖百世 可知也(기혹계주자 수백세 가지야)

  자장이 물었다. “열 세대 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공자 말하길 은이 하나라의 예법을 계승한 이래 더하고 덜한 것은 알 수 있다. 주가 은나라의 예법을 이었는데 더하고 덜한 것은 알만하다. 혹시 주나라를 계승하는 나라가 있다면 백세라도 말만하다.” 하였다.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자왈 비기귀이제지 첨야 견의불위 무용야)

  공자가 말하길 “(자신과 관계없는) 귀신(대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첨을 하는 것이요 의를 보고도 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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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不亦說乎(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불역락호)아?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공자가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有子曰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유자왈기위인야효제이호범상자선의)

   不好犯上而好作亂者未之有也(불호범상이호작난자미지유야)

   君子務本本立而道生孝弟也者其爲仁之本與(군자무본본립이도생효제야자기위인지본여)

   유자가 말하길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한데도

   윗사람을 침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있지 않았다.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하니 근본이 바로 서야 도가 생기는 것이다 효도와 공손은 인을 만드는 근본이다.

 

子曰 巧言令色鮮矣仁(교언영색선의인)

   공자왈 교묘하게 말을 잘 꾸미고 낯빛을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 중 어진 이는 드물다.”

 

曾子曰(증자왈) 吾日三省吾身爲人謨而不忠乎(오일삼성오신위인모이불충호)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 傳不習乎(전불습호)

   증자왈 나는 하루 세가지로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충실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귐에 신의가 없지 않았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열심히 익히지 않았는가?”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도천승지국경사이신절용이애인사민이시)

   공자왈 천승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업무를 공손히 하고 신의를 지킬 것이며

   절약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백성을 부리는 것은 때에 맞게 하라하셨다.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 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공자왈 젊은이는 집에서는 효도하고 집밖에 나가서는 위사람을 공경하고 행동을 삼가고

   믿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이와 친하게 지내고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울지니라

 

子夏曰(자하왈) 賢賢易色(현현이색) 事父母 能竭其力(사부모 능갈기력)

   事君 能致其身(사군 능치기신) 與朋友交 言而有信(여붕우교 언이유신)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수왈미학 오필위지학의)

   * 賢賢易色 : 독음에 현현이색, 현현역색두 가지 주장이 있다.

   자하가 말하길 어진 사람을 어질게 대하며 용모에 집착하지 않고,

   부모를 섬김에 그 힘을 다하고, 임금 섬기기에 그 몸을 버리고,

   친구와 사귐에는 말에 믿음이 있으면 비록 그가 배우지 않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군자부중즉불위 학즉불고)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공자왈 군자는 언행이 무겁지 않으면 곧 위엄이 없으니 배워도 굳건하지 못할 것이고,

   성심과 믿음을 주로 해야 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으로 삼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曾子曰(증자왈) 愼終追遠 民德 歸厚矣(신종추원 민덕 귀후의)

   증자왈 상례를 신중히 하고 제사를 정성껏 모시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

 

子禽 問於子貢曰 夫子 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자금 문어공자왈 부자 지어시방야 필문기정 구지여 억여지여)

   子貢曰(자공왈) 夫子 溫良恭儉讓以得之(부자 온양공검양이득지)

   夫子之求之也(부자지구지야) 其諸異乎人之求之與(기저이호인지구지여)

   자금이 자공에게 물어 가로되 공자께서는 어느 곳에 이르던 반드시 정사를 들으셨는데

   스스로 구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상대가 요청한 것입니까?”

   자공이 말하길 선생님은 온순하고 선량하며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시기 때문에

   정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니 선생님께서 그것을 구하셨다고 해도

   그 방도는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子曰 父在 觀其志(부재 관기지) 父沒 觀其行(부몰 관기행)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삼년 무개어부지도 가위효의)

   공자왈 아버지 살아실제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 돌아가시면 그 행적을 살필 것이니

   삼년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아야 효자라고 할 것이다.”

 

有子曰(유자왈) 禮之用(예지용) 和爲貴(화위귀) 先王之道斯爲美(선왕지도사위미)

   小大由之(소대유지) 有所不行(유소불행) 知和而和(지화이화) 不以禮節之(불이예절지) 亦不可行也(역불가행야)

   유자가 말하길 예절의 쓰임에는 화합을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 역시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작고 큰 것이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행해지지 않는 것도 있으니 화합만을 알고

   화합을 하지만 그것을 예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역시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有子曰(유자왈) 信近於義(신근어의) 言可復也(언가복야) 恭近於禮(공근어례)

   遠恥辱也(원치욕야) 因不失其親(인불실기친) 亦可宗也(역가종야)

   유자가 말하길 믿음이 예에 가까우면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친근함을 잃지 않으면 또한 존경할 수 있을 것이다.”

 

子曰 君子食無求飽(군자식무구포) 居無求安(거무구안) 敏於事而愼於言(민어사이신어언)

   就有道而正焉(취유도이정언) 可謂好學也已(가위호학야이)

   공자가 말씀하시길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말고 거처하는데 편안한 것을 구하지 말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하며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子貢曰(자공왈) 貧而無諂(빈이무첨) 富而無驕(부이무교) 何如(하여)

   子曰(자왈) 可也(가야) 未若貧而樂道(미약빈이락도) 富而好禮者也(부이호례자야)

   子貢曰(자공왈) 詩云(시운) 如切如磋如琢如磨(여절여차여탁여마)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

   子曰(자왈) 賜也(사야)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 告諸往而知來者(고저왕이지래자)

   자공이 말하길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왈 괜찮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자공이 묻길 시경에 절차탁마란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입니까?”

   공자왈 비로소 너와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겠다. 지난 일을 말하니 앞일까지 아는구나

 

子曰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

   공자왈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주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몰라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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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曰(주자왈)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하며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日月逝矣(일월서의)歲不我延(세불아연)嗚呼老矣(오호노의)是誰之愆(시수지건)인가

  주자가 말하기를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해와 달은 가니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 늙었구나라고 탄식하면 이 누구의 허물인가?”라고 하였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노학난성)하니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이라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하여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이라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못 가의 봄 풀은 꿈에서 아직 깨지 못했건만,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陶淵明詩云(도연명시운) 盛年(성년)不重來(불중래)하고 一日(일일)難再晨(난재신)이니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하라 歲月(세월)不待人(불대인)이니라

  도연명 시에 젊은 나이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다시 오지 않는다. 때에 맞춰 열심히 하여라. 세월은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陶淵明(도연명) 雜詩 其一


人生無根蒂(인생무근체), 飄如陌上塵(표여맥상진)
分散逐風轉(분산축풍전), 此似非常身(차이비상신)
落地爲兄弟(낙지위형제), 何必骨肉親(하필골육친)
得懽當作樂(득환당작락), 斗酒聚比鄰(두주취비린)
盛年不重來(성년부중래),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인생은 초목처럼 뿌리가 없어 떠도는 거리의 먼지처럼 날아다니고,
바람 따라 흩어져 뒹구니 이 몸은 이미 정상(正常)이 아니구나.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다 형제리니 어찌 골육만 친척이리오?
마음에 기쁘면 마땅히 노래 짓고 말 술로 이웃을 모을지라도,
젊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않나니
때에 이르러 마땅히 부지런하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荀子曰(순자왈) 不積蹞步(불적규보)無以至千里(무이지천리)不積小流(불적소류)無以成江河(무이성강하)니라

  순자가 말하길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르지 못하고, 작은 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하江河를 이루지 못한다.” 하였다.

 

朱文公(주문공)曰 家若貧(가약빈)이라도 不可因貧而廢學(불가인빈이폐학)이요 家若富(가약부)라도 不可恃富而怠學(불가시부이태학)이니라.

  집이 가난해도 배우지 않아서는 안되고 집이 부유해도 이를 믿고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貧若勤學(빈약근학)이면 可以立身(가이입신)이요 富若勤學(부약근학)이면 名乃光榮(명내광영)하리니 惟見學者顯達(유견학자현달)이요 不見學者無成(불견학자무성)이니라.

  가난해도 부지런히 배우면 뜻을 펼 수가 있고 부유해도 부지런히 배우면 명성을 떨칠 수가 있다. 오로지 배워야 세상에 드러날 수 있음을 이미 보았고 배운 사람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나니라.

 

學者(학자)乃身之寶(내신지보)學者(학자)乃世之珍(내세지진)이니라.

  배움이란 사람의 보배요 배운 사람은 세상의 보배로다.

 

是故(시고)學則乃爲君子(학즉내위군자)不學則爲小人(불학즉위소인)이니 後之學者(후지학자)宜各勉之(의각면지)니라.

  이렇기 때문에 배우면 군자에 이르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 후세에 배울 사람들은 마땅히 근면하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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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觀(인관) 賣綿於市(매면어시)할새 有署調者以穀買之而還(유서조자이곡매지이환)이러니 有鳶(유연)攫其綿(확기면)하여 墮印觀家(타인관가)어늘 印觀(인관)歸于署調曰(귀우서조왈) 鳶墮汝綿於吾家(연타녀면어오가)()還汝(환녀)하노라 署調曰(서조왈) ()攫綿與汝(확연여녀)天也(천야)吾何受爲(오하수위)리오 印觀曰(인관왈) 然則還汝穀(연즉환녀곡)하리라 署調曰(서조왈) 吾與汝者市二日(오여녀자시이일)이니 穀已屬汝矣(곡이속녀의)라하고 二人(이인)相讓(상양)이라 幷棄於市(병기어시)하니 掌市官(장시관)以聞王(이문왕)하여 並賜爵(병사작)하니라

  (신라 때) 인관이 장에서 솜을 파는데 서조가 곡식으로써 솜을 사서 돌아갔는데 솔개가 그 솜을 채 가지고 인관의 집에 떨어뜨렸다. 인관이 서조에게 솜을 돌려보내며 말하기를, “솔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으므로 너에게 돌려보낸다.” 하니, 서조는 말하기를, “솔개가 솜을 채다가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이 한 일이다. 내가 어찌 받겠는가?” 하였다. 인관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솜 값으로 받은 너의 곡식을 돌려보내겠다.” 하자, 서조가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준 지가 벌써 두 장()이 지났으니, 곡식은 이미 너의 것이 되었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다가 솜과 곡식을 다 함께 장에 버리니, 시장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모두 벼슬을 주었다.

 

洪公耆燮(홍공기섭)少貧甚無聊(소빈심무료)러니 一日朝(일일조)婢兒踊躍獻七兩錢曰(비아용약헌칠양전왈) 此在鼎中(자재정중)하니 米可數石(미가수석)이요 柴可數馱(시가수태)天賜(천사)니이다 公驚曰(공경왈) 是何金(시하금)고하고 卽書失金人推去等字(즉서실금인추거등자)하여 付之門楣而待(부지문미이대)러니 俄而姓劉者來問書意(아이성유자래문서의)어늘 公悉言之(공실언지)한대 劉曰理無失金於人之鼎內(유왈리무실금어인지정내)하니 果天賜也(과천사야)盍取之(합취지)닛고 公曰非吾物(공왈비오물)()劉俯伏曰(유부복왈) 小的(소적)昨夜(작야)爲窃鼎來(위절정래)하다가 還憐家勢蕭條而施之(환련가세소조이시지)러니 今感公之廉价(금감공지렴개)하고 良心自發(양심자발)하여 誓不更盜(서불갱도)하고 願欲常侍(원욕상대)하오니 勿慮取之(물려취지)하소서 公卽還金曰汝之爲良則善矣(공즉환금왈여지위양즉선의)金不可取(금불가취)라하고 終不受(종불수)하니라 ()公爲判書(공위판서)하고 其子在龍(기자재룡)爲憲宗國舅(위헌종국구)하며 劉亦見信(유역견신)하여 身家大昌(신가대창)하니라

  홍공(洪公) 기섭(耆燮)이 젊었을 때 가난하여 매우 무료(無聊)하였는데, 하루는 아침에 어린 계집종이 기쁜 듯 뛰어와 돈 일곱 냥을 바치며 말하기를, “이것이 솥 안에 있었으니, 쌀이 몇 섬일 수 있고, 나무가 몇 바리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하였다. 공이 놀라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된 돈인가?”하고 곧 돈 잃은 사람은 와서 찾아가라는 글을 써서 대문에 붙여 놓고 기다렸다. 얼마 후 성이 유()씨인 사람이 찾아와 글 뜻을 묻자, 공은 자세히 그 내용을 말해 주었다. 유가가 말하기를, “이치상 남의 솥 안에 돈을 잃는 일은 없으니, 참으로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왜 취하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찌하리오?” 하였다. 유씨가 엎드려 말하기를, “소인이 어젯밤에 솥을 훔치러 왔다가 도리어 가세(家勢)가 너무 쓸쓸한 것을 불쌍히 여겨 이것을 놓고 돌아갔습니다. 지금 공의 청렴(淸廉)에 감동하고 양심이 저절로 우러나 도둑질을 아니할 것을 맹세하고, 앞으로는 항상 옆에서 모시기를 원하오니 염려 마시고 취하소서.” 하였다. 공이 곧장 돈을 돌려주며 말하기를, “네가 착하게 된 것은 좋으나 이 돈은 취할 수 없다.” 하고 끝내 받지 않았다. 뒤에 공은 판서가 되고 그의 아들 재룡(在龍)은 헌종(憲宗)의 국구(國舅)가 되었으며, 유씨 또한 신임을 얻어 몸과 집안이 크게 번창하였다.

  * 洪耆燮 : 홍기섭은 조선 순조 때 인물, 본관은 남양이며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의 할아버지로 형조판서를 지냈고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아버지

 

高句麗平原王之女(고구려평원왕지녀)幼時(유시)好啼(호제)러니 王戱曰(왕희왈) 以汝(이녀)將歸愚溫達(장귀우온달)하리라 及長(급장)欲下嫁于上部高氏(욕하가우상부고씨)한대 女以王不可食言(여이왕불가식언)이라하여 固辭(고사)하고 終爲溫達之妻(종위온달지처)하니라 蓋溫達(개온달)家貧(가빈)하여 行乞養母(행걸양모)하니 時人(시인)目爲愚溫達也(목위우온달)러라 一日(일일)溫達(온달)自山中(자산중)으로 負楡皮而來(부유피이래)하니 王女訪見曰吾乃子之匹也(왕녀방견왈오내자지필야)라하고 乃賣首飾(내매수식)하여 而買田宅器物頗富(이매전택기물파부)하고 多養馬以資溫達(다양마이자온달)하여 終爲顯榮(종위현영)하니라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딸이 어렸을 때 울기를 잘하여 왕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너를 장차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낼 것이다.” 하였다. 딸이 자라서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자 딸은 임금이 식언(食言)을 해서는 안 된다.” 하여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온달은 집이 가난하여 돌아다니며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니 당시 사람들이 지목하여 바보 온달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온달이 산속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돌아오니, 임금의 딸이 찾아와 보고 말하기를, “제가 바로 당신의 베필입니다.” 하고는 머리의 장식물을 팔아 밭과 집과 기물을 매우 넉넉하게 사들이고, 말을 많이 길러 온달을 도와 마침내 높은 지위에 올라 영화롭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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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兒(유아)或詈我(혹리아)하면 我心(아심)覺懽喜(각환희)하고 父母(부모)嗔怒我(진노아)하면 我心(아심)反不甘(반불감)이라 一喜懽一不甘(일희환일불감)하니 待兒待父心何懸(대아대부심하현)勸君今日逢親怒(권군금일봉친노)어든 也應將親作兒看(야응장친작아간)하라

  어린 자식이 혹시 나를 꾸짖으면 내 마음은 기쁘게 깨닫고 부모가 나를 꾸짖고 노하면 내 마음에 도리어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나는 기쁘고 하나는 달갑지 않아하니 아이를 대하고 어버이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 그다지도 다른고? 그대에게 권하니, 이제 어버이의 노여워하시면 또한 마땅히 어버이를 어린아이로 대하듯 해보아라.

 

兒曹(아조)出千言(출천언)하되 君聽常不厭(군청상불염)하고 父母(부모)一開口(일개구)하면 便道多閑管(편도다한관)이라 非閑管親掛牽(비한관친괘견)이니 皓首白頭(호수백두)多諳練(다암간)이라 勸君敬奉老人言(권군경봉노인언)하고 莫敎乳口爭長短(막교유구쟁장단)하라

  어린 자식이 많은 말을 하면 들어도 항상 싫어하지 않으면서 부모는 한번만 말을 하여도 잔소리가 많다고 한다. 쓸데없는 참견이 아니라 어버이가 마음에 걸리고 끌려서이니 흰머리가 되도록 긴 세월에 겪어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권하니 늙은 사람의 말을 공경하여 받들고, 젖냄새 나는 입으로 길고 짧음을 다투려 하지 마라.

 

幼兒尿糞穢(유아뇨분예)君心(군심)無厭忌(무염기)로되 老親涕唾零(노친체타령)反有憎嫌意(반유증혐의)니라 六尺軀來何處(육척구래하처)父精母血成汝體(부정모혈성여체)니라 勸君敬待老來人(권군경대노래인)하라 壯時爲爾筋骨敝(장시위이근골폐)니라

  어린 자식의 오줌과 똥의 더럽지만 싫어하지 않고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는 것은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한다. 그대 여섯 자의 몸이 어디서 나왔는고?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그대의 몸이 이루어졌다. 그대에게 권하니, 늙어가는 사람을 공경스레 대접하라. 젊었을 때 부모는 그대를 위하여 살과 뼈가 닳으셨도다.

 

看君晨入市(간군신입시)하여 買餠又買餻(매병우매고)하니 少聞供父母(소문공부모)하고 多說供兒曹(다설공아조)親未啖兒先飽(친미담아선포)하니 子心(자심)不比親心好(불비친심호)勸君多出買餠錢(권군다출매병전)하여 供養白頭光陰少(공양백두광음소)하라

  그대가 새벽에 시장에 가서 밀가루 떡을 사고 또 흰떡을 사는 데 부모를 공양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자식에게 준다고 대부분 말한다. 어버이는 아직 맛보지도 않았건만 제자식만 먼저 배부르니, 자식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에 비할 수 없음이라. 그대에게 권하니, 떡 살 돈을 많이 내어 흰머리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버이를 공양하는 것이 찰나처럼 짧으니라.

 

市間賣藥肆(시간매약사)惟有肥兒丸(유유비아환)하고 未有壯親者(미유장친자)하니 何故兩般看(하고양반간)兒亦病親亦病(아역병친역병)醫兒不比醫親症(의아불비의친증)이라 割股還是親的肉(할복환시친적육)이니 勸君亟保雙親命(권군극보쌍친명)하라

  시장 약 파는 가게에는 오직 아이를 살찌게 하는 환약만 있고, 어버이를 튼튼하게 하는 약은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이도 병들고 어버이도 병들었을 때 아이의 병을 고치는 것이 어버이의 병을 고치는 것에 비할 수 없다. 다리를 베어서라도 두루 어버이의 살이로다. 그대에게 권하니 빨리 어버이의 목숨을 보호하라.

 

富貴(부귀)養親易(양친이)로되 親常有未安(친상유미안)하고 貧賤(빈천)養兒難(양아난)하되 兒不受饑寒(아불수기한)이라 一條心兩條路(일조심양조로)爲兒終不如爲父(위아종불여위부)이라 勸君養親如養兒(권군양친여양아)하고 凡事(범사)莫推家不富(막추가불부)하라

  부귀하하여 어버이를 봉양하기는 쉽지만 어버이는 항상 안녕하시지 못하고 가난하고 천하면 자식을 기르기가 어렵지만 자식은 배고픔과 추위를 받지 않는다. 한 가지 마음 두 가지 길에 자식을 위하는 것이 마침내 어버이를 위하는 것만 같지 못하도다. 그대에게 권하니, 양친을 섬기기를 자식을 키우듯이 하고 모든 일을 집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미루지 말라.

 

養親(양친)只二人(지이인)로되 常與兄弟爭(상여형제쟁)하고 養兒(양아)雖十人(수십인)이나 君皆獨自任(군개독자임)이라 兒飽煖親常問(아포난친상문)하되 父母饑寒不在心(부모기한불재심)이라 勸君養親(권군양친)須竭力(수갈력)하라 當初衣食(당초의식)被君侵(피군침)이니라

  양친은 다만 두 분이로되 봉양함에는 늘 형제들과 다투고 자식을 기를 때는 비록 열 명이라도 모두 그대 혼자 스스로 맡는다. 자식에게 배부르고 따뜻한지는 항상 친절히 물으면서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은 마음에 있지 않다. 그대에게 권하니 부모를 봉양함에 반드시 힘을 다하라. 당초에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그대에게 빼앗기셨도다.

 

親有十分慈(친유심분자)하되 君不念其恩(군불념기은)하고 兒有一分孝(아유일분효)하면 君就揚其名(군취양기명)이라 待親暗待兒明(대친암대아명)하니 誰識高堂養子心(수식고당양자심)勸君漫信兒曹孝(권군만신아조효)하라 兒曹樣子在君身(아조친자재군신)이니라

  어버이는 자식을 십분 사랑하시지만 그대는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아니한다. 제 자식이 조금만 효도하면 그대는 곧 그 이름을 드러낸다. 어버이를 대접함엔 어둡고 자식을 대함엔 밝으니 누가 어버이의 자식 기르는 마음을 알까? 그대에게 권하니, 네 자식의 효도를 무조건 믿지 말아라. 네 자식의 본보기가 그대 자신이니라. 어버이에 대한 효도는 곧 자신을 위한 것이다. 자식은 은연중에 그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인간으로서 가족간의 도리를 깨달아 배우게 된다. 확실한 본보기가 곧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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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曰(주역왈) 善不積(선불적)이면 不足以成名(부족이성명)이요 惡不積(악불적)이면 不足以滅身(부족이멸신)이어늘 小人(소인)以小善(이소선)으로 爲无益而弗爲也(위무익이불위야)하고 以小惡(이소악)으로 爲无傷而弗去也(위무상이불법야)니라 ()惡積而不可掩(악적이불가엄)이요 罪大而不可解(죄대이불가해)니라

  주역에서 말하기를 선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을 쌓지 않으면 몸을 망치지 않는다. 소인은 작은 선은 유익함이 없다고 하여 행하지 않고, 작은 악은 해로움이 없다고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 가리지 못하고 죄가 커져 풀지 못한다.” 하였다.

 

履霜(이상)이면 堅氷至(견빙지)이니 臣弑其君(신시기군)하며 子弑其父(자시기부)非一朝一夕之事(비일조일석지사)其所由來者漸矣(기소유래자점의)니라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에 이르는 때가 되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며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패륜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유래하는 것이 점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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