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1990년대 말에 봤던 글이다. 딴지일보였던 것 같은데 하여간 다들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글인데 오랫만에 생각이 나서 찾아서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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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그동안 일제가 유포한 식민사관과 체계적인지 못한 비과학적 고증으로 뒤틀렸던 각종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올곧게 하고 겨레의 자긍심을 복원케 하는 과업을 수행해 왔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본지가 그동안 규명해낸 역사의 실체들은 앞으로 영원히 인류의 문화적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간 본지의 압도적인 연구활동을 망연자실 지켜보며, 그 탁월한 고증능력에는 도저히 범접조차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엄청난 자괴감에 괴로워 했을 국내사학계에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바이다. 본지가 워낙 군계일학의 발군이라서 그런 거지 사학계 너거뜰이 못 나서 그런 것은 아니니 힘들 내시기 바란다. 그러고 보니, 본지는 참 못하는 것도 없다.
최근 본지는 세계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메가톤급 발굴을 또 한 건 올려 이에 독자제위께 포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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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한 이태리 태생 모험가의 미대륙 발견은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던 서반구와 동반구가 최초로 조우함으로써 미대륙이 세계사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수 백년을 이어가는 유럽 세계팽창의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모험가는 바로 크리스토퍼 콜롬부스.
그는 당대 일반인식과는 다르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대서양 서쪽으로 항해하면 반드시 인도에 닿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결국, 1492년 8월 3일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출발, 70여 일의 항해 끝에 마침내 지금의 카리브 연안에 도착하게 된다. 그 후 총 4차례 미대륙을 왕래했으나,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이 새로운 대륙이 아니라 아시아의 어디쯤이라고 믿었다 한다.
 
그런데...
 
그가 죽을 때까지 그곳이 아시아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지리정보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그가 미대륙에서 만났던 어떤 한 사람 때문이었으며, 또한 그에 의해 이미 미대륙은 발견되었고, 콜롬부스라는 이름 역시 사실은 그 사람이 지어준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본지 역사고증팀이 스페인 왕립도서관에서 발굴한 한 고문서로 인해 밝혀졌다.
 
콜롬부스 초상화에도 등장하는 이 고문서는 바로...
 
" 박규표류기 " (朴規漂流記)
 
박규라는 한 조선인이 미대륙까지의 표류상황과 그 후 정황을 담담하면서도 유려한 필체의 서사시로 기술한 이 문서는 우리 선조들의 불굴의 모험심과 웅대한 기개를 확인케 하고 있다.
 
본지 자료실에 보관 중인, 조선 9대왕 성종(1469-1494)때 집현전에서 발간한, 당시의 사건기록을 담은 희귀도서인 "사건과실화(事件過悉禍)" 맨 마지막 장에 있는 "행불자 명단"에서도 박규는 실존 인물로 확인 되고 있다.
 
" 함경지방의 수군에서 큰 활약을 하던 박규 라는 장군이 있었으니, 평소 더 먼 바다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하던 차에, 성종 14년(1482)에 혼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나아갔으나 그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 "
 
이 표류기에 따르면, 태평양에서 표류하며 물고기와 빗물로 연명하던 박규 장군은 80일이 되던 어느날 새벽 드디어 뭍에 닿게 된다. 홀홀단신으로 미지의 대륙에 도착해 황망한 중에도 박규 장군은 한 편의 시조로 그 감흥을 읊어내는 풍류정신을 잃지 않았다. <박규표류기>에는 이 도착의 감동과 출정의 각오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아매리가로 我昧離歌路
양기고흠 洋氣高欽
고리아타운은 孤離我舵運銀
로수안절래수 怒水按折來搜
 
나는 새벽에 길을 떠나며 이 노래를 읊네 
큰 바다에 서려있는 기운을 높이 흠모하던 차에
외롭게 떠나온 길, 나 홀로 은빛 키를 잡으며
성난 물을 누르고 끊으며... 찾아왔네
 
이후 박규 장군의 영도력에 복속하게 되는 원주민들은 이 시를 기리기 위해, 그 땅을 < 아매리가 >라 칭하고, 박규 장군이 최초 도착했던 지역을  <로수안절래수>라 불렀다 한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아메리카로 떠나라!>는 뜻의 의 어원 역시 이 시조 되겠다.
 
무장으로서 훤칠한 키에 기골이 장대하면서도 이렇듯 안빈낙도의 여유와 풍류마저 갖춘 박규 장군을 현지 원주민 처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모했다 한다. 그 역시 외로움을 오로지 달달리만으로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현지 원주민 처녀들과의 애틋한 사랑을 다소 애로틱한 한 편의 시로 기록해 놓기도 했다.
 
기수마이애수 (氣壽馬怡愛水)
애수홀애수홀 (愛水惚愛水惚)
 
말과 같이 생명의 기운이 솟구치니 기쁜 사랑의 물이 나는구나
황홀한 사랑의 물이여, 황홀한 사랑의 물이여..
 
박규 장군은 비록 그들이 사대부집안의 규수들이 아니라 족보도 없는 원주민 처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자식들에게 모두 호부호형을 허하였으니, 그 계급타파의지와 사해동포정신은 칭송 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이 자식들은 박규 장군의 함경도 사투리를 따라 박규 장군을 <아바쥐>로 호하였으니, 미대륙 역사상 가장 용맹한 부족이었던 <아파치>부족은 바로 그렇게 태동하게 된다.
 
이 시조를 사랑의 주문으로 이해한 인디언들 사이에서, 이 시조는 상대를 유혹할 때 무릎을 꿇고 <기수마이애수>라고 읊조리는 구애의 상용구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때 여자는 새침떼게 등을 돌리고 있다가 애수홀, 애수홀 하고 화답하는 것으로 사랑을 허락했다.
 
훗날 이렇게 남자가 무릎 꿇고 여자가 등을 돌리고 있는 인디언들의 구애행위를 멀리서 목격한 무식하고 미개한 양넘들은 남자가 엉덩이에 키스했더니 여자가 거기가 아니구 정확하게 똥구녕에 해줘.. 하고 화답한 것으로 오인해 만들어진 말이 바로 < kiss my ass >와 < ass hole > 되겠다.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렇듯 당당하고 올곧은 기개를 가진 박규 장군을 너나 할 것 없이 추종하게 되었고, 박규 장군은 오래지 않아 수만 필 이상의 말과 수 천의 처자를 거느리며 미대륙을 호령하게 되니, 이들 원주민 인디언들은 수만 필의 말을 소유한 박규 장군을 숭상하여 그를 " 말을 많이 소유한 박씨 성을 가진 위인" 이라 하여 마다박가(馬多朴家)라 불렀다. 훗날 서구 이주민들은 박규장군의 영도력을 시샘하며 혼자 모든 재물을 차지하려는 위인이란 뜻으로 폄하하여 마다박가(馬多朴家)를 썼으니 < mother fucker >의 어원 되겠다.
 
박 규 장군은 온화하고 기품 있었으나 장군 출신으로 기강을 위해 상벌체계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던 터, <박규표류기>에 따르면 그는 죄를 지은 자를 조선시대의 형법에 따라서 처벌하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정해진 형벌을 내리고도 그 죄값을 치루기에 부족할 때 집행관의 판단에 따라 내려지는 가중처벌이 있었으니 죄인을 묶어놓고 후장을 발로 걷어차는 형벌이었다. "발을 더하라!" 구령에 따라 행해졌기에 이를 "족가"(足加)라 불렀다. 죄인에게 "족가지마"형벌을 내리며 가운데 손가락을 위엄있게 치켜들고 있는 박규 장군 늠름한 모습 
 
국왕능멸이나 모반을 꾀한 자들에게는 위의 "족가형"보다 더한 형벌을 내렸으니, 이 형벌은 다섯 손가락 중에 으뜸으로 긴 가운데 손가락을 죄인의 후장에 대고 다른 이가 이를 발로 차서 어퍼컷을 먹이는 끔직한 형벌이었다 한다.
"손가락에 발을 더하여 마비까지 이르게 되다"라 하여 이를 "족가지마(足加指痲)"라고 불렀다 한다.
이 형벌을 당한 자는 똥꼬확장증에 시달리며 장기간 사회부적응 상태가 되어 사회복귀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에 그 참상이 끔직하다 하여 15대 광해군때 이르러 전면폐지되었으나, 민간에서는 끊임없이 전래되어 현재의 국민스포츠인 똥침으로 정착되었다.
 
그 이후 "족가" 와 "족가지마" 는 큰 잘못을 하고도 뉘우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한 표현으로 정착되었고, 이것이 양넘들에게 전파되어 상대를 위협하고자 할 때, 박규 장군이 두렵지도 않냐는 뜻으로 박규 장군의 이름을 높이 외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휘두르는 < fuck you>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게 박규 장군의 영도아래 평화롭기만 하던, 어느 날... 
동부 해안의 인디언들에게서 봉화신호가 날아온다. 동부 해안에 상륙하는 희멀건하게 생긴 바짝 마른 놈 하나를 포박해 두었으니 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지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박규 장군은 친히 심문하러 달려가, 굶고 지쳐 피골이 상접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못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짝달만한 그 사람을 보고 나직하게 이렇게 읊조렸다 한다.
 
거리수토부 골음부수 ( 距離數吐芙 骨陰夫帥 )
조온마난색기(朝溫麻煖色氣)
 
먼 길 오며 수차 토하여 연꽃처럼 약하고 피골이 음하게 된 남자로구나
아침마다 온수로 목욕시키고 삼으로 따뜻한 옷을 지어주어 얼굴색이 기운을 차리게 하라..
 
박규 장군의 하해와 같은 은총에 감복한 이 희멀건 남자는 엎드려 눈물로 감사드리니, 이를 지켜본 인디언들은 그 남자를 <거리수토부 골음부수>라 불렀고 그 역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죽을 때까지 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취했으며, 인디언들은 <골음부수>처럼 키가 작고 상황파악 못하는 사람을 보면 <조온마난색기>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토록 큰 은혜를 입고 건강을 회복한 <골음부수>는 고국에 대한 향수와 공명심에 그만 눈이 어두워져 자신의 은인 박규 장군을 배반하기에 이른다. 이 신비의 미대륙을 자신이 발견한 것인양 하여 영웅이 되고 싶은 욕심에 대서사시 <박규표류기>를 훔쳐 야심한 밤에 도주하게 된 것이다.
이를 보고 받은 박규 장군은 가고 싶다면 언제든 보내 줄 것이라 약속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야반도주한 <골음부수>를 한탄하며, 자연과 벗하며 결코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어부나 되어 살지 않고선... 이라며 자신의 무위자연사상을 담아 이렇게 안타깝게 일갈한다.
 
애이시불노무색기(哀離時不怒無索期)
선어부비취 (先漁夫非取)
 
아 슬프도다. 떠날 때가 되면 화내지않고 찾지도 않을거라 기약했건만
먼저 어부가 되어 아무 것도 취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 후 인디언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배신을 때리는 인간을 지칭할 때, <선어부비취>라 불렀으며, 이것이 양념들에게 전파되어 < son of bitch >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박규 장군 행적은 <박규표류기>가 도난 당해 더 이상 기록이 없다. 그러나, 세계사에 따르면 <골음부수>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영웅이 되었지만, 박규 장군의 웅대한 기개와 아량을 잊지 못하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배반한 죄책감으로 인해 심히 괴로워 하다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길 3차례나 더하였으나 끝내 원래 그 곳을 찾지 못한 체 어떤 섬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우리 선조 박규 장군이 터를 닦고 기반을 마련해놓은 속국에 더부살이로 살기 시작했고,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일상어조차 박규 장군의 유려한 시어들에서 빌어 온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미국 노무 쉐이들이 최근 들어 그 역사를 망각하고 감히 어른의 나라에서 폭탄을 아무데나 떨어뜨리지를 않나 물에 독극물을 뿌려대지 않나, 겨우 한국의 속국이었던 미국이 이 지랄을 하는 데도 모가지 힘도 한 번 제대로 못 주고 질질 끌려 다니는 정부는 하늘에 계신 박규 장군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미국넘들도 애시당초 지들이 얻을 것이 있어 이 땅에 있는 바, 우리가 얻을 것이 있으면 당당히 얻고, 주장할 것이 있으면 당당히 주장하여야 하는 법이거늘, 언론이라고 하는 것들도 제대로 항의와 주장 한 번 해보기도 전에 미리부터 '이 사태가 반미감정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느니 지레 꼬리를 말아버리는 빙신 같은 작태를 목도한 본 역사고증팀은 미국넘들이 대구리 숙이고 정식으로 사죄할 때까지 박규 장군의 이름을 높히 외치며 족가지마의 형벌을 연속 콤비블로우로 미국넘들에게 내릴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박규!     박규!     양기고흠!     양기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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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참전에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한자유희  유사고사성어 들 찾아서 하나씩 옮겨 보았다.

 

魚走九里 (어주구리)

 

옛날 한나라 때의 일이다.

어느 연못에 예쁜 잉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들어 왔는지 그 연못에 큰 메기 한마리가 침입하게 된 것이다. 

그 메기는 그 예쁜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고 했다.

잉어는 연못의 이곳저곳으로 메기를 피해 헤엄을 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굶주린 메기의 추격을 피하기에는…… 피하다 피하다 못한 잉어는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잉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오르게 되고, 잉어는 뭍에 오르자마자 꼬리를 다리삼아 냅다 뛰기시작했다. 

메기가 못따라 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잉어가 뛰어간 거리는 약 구리 정도였을까? 아무튼 십리가 좀 안 되는 거리였다. 

그 때 잉어가 뛰는 걸 보기 시작한 한 농부가 잉어의 뒤를 쫓았다. 

잉어가 멈추었을 때 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다. “어주구리(魚走九里)……” 물고기가 구리를 달려왔다. 

그리고는 힘들어 지친 그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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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참전에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한자유희  유사고사성어 들 찾아서 하나씩 옮겨 보았다.

 

始發奴無色旗 (시발노무색기)

 

옛날부터 중국 고사에는 삼황오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중 복희씨는 주역의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그 복희씨 시대의 이야기이다. 복희씨가 중국을 다스리고 있던 어느 날, 태백산의 한 산마을에 돌림병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들었다.

그리하여 복희씨는 그 마을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은 황하의 물이 시작되는 곳이라 하여, 시발(始發)현(縣)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 마을에 도착한 복희씨는 돌림병을 잠재우기 위해 3일 낮 3일 밤을 기도하였는데, 3일째 되는 밤 기도 도중 홀연 일진광풍이 불면서 왠 성난 노인이 나타나 “나는 태백산의 자연신이다.

이 마을사람들은 몇 년째 곡식을 거두고도 자연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이를 괘씸히 여겨 벌을 주는 것이다.

내 집집마다 피를 보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으리.” 하였다.

복희씨는 자연신이 화가 난 것을 위로하기 위해 방책을 세우고 마을사람들을 불러모아 말하였다. 

“자연신의 해를 피하기 위해선 집집마다 깃발에 동물의 피를 붉게 묻혀 걸어두어야 하오!” 

그런데, 그 마을사람 중에 시발(始發)현(縣)의 관노(官奴)가 하나 있었으니, “귀신은 본디 깨끗함을 싫어하니, 나는 피를 묻히지 않고 걸 것이다.”하여 붉은 피를 묻히지 않은 깃발을 걸었다. 

그날 밤 복희씨가 기도를 하는데, 자연신이 나타나 노여워하며 말하길 “이 마을사람들이 모두 정성을 보여 내 물러가려 하였거늘, 한 놈이 날 놀리려 하니 몹시 불경스럽도다. 내 역병을 물리지 않으리라.”하였다. 

그리하여 다음날부터 전염병이 더욱 돌아 마을 사람들이 더욱 고통스럽고 많은 이가 죽었으니, 이는 그 마을(시발현)의 한 노비가 색깔 없는 깃발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始發奴無色旗(시발노무색기)”라고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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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溫馬亂色氣 (조온마난색기)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조씨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씨에게는 만삭인 부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부인이 말하길 “여보! 어젯밤 꿈에 말 한 마리가 온천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는 꿈을 꾸지 않았겠어요.

아마도 우리가 말처럼 활달하고 기운 센 아들을 얻게 될 태몽인 것 같아요.”라고 하였다.

조씨는 심히 기뻐하여 “그것 참 좋은 태몽이구려. 어서 빨리 우리 아들을 보았으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사흘 뒤 조씨 부인은 매우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하였고, 조씨는 태몽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溫馬(온마)”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온마가 스무 살이 되었다. 조온마는 조씨 부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마을의 처녀란 처녀는 죄다 욕보이는 난봉꾼이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결국 조온마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조온마는 판관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판관이 말하길 “조온마는 색기로 인하여 마을을 어지럽혔다(趙溫馬亂色氣:조온마난색기).  

따라서 거세를 당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결국 조온마는 거세를 당하였고, 후일 사람들은 경거망동을 하는 사람에게 조온마의 일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조온마난색기”라고 충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야사에 의하면 조온마의 키는 5척으로 150cm 정도의 작은 키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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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참전에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한자유희  유사고사성어 들 찾아서 하나씩 옮겨 보았다.

 

施罰勞馬(시벌로마)

 

고대 중국의 당나라 때 일이다.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날 길을 가다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농부가 밭에서 허벌나게 열심히 일하는 말의 뒤에 서서 자꾸만 가혹하게 채찍질을 가하는 광경을 보았다.

계속해서 지켜보던 나그네는 말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농부에게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왜 자꾸만 채찍질을 하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농부는 자고로 말이란 쉼없이 부려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가 없어 이내 자리를 뜬 나그네는 열심히 일하는 말이 불쌍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긴 탄식과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한다.

“아! 施罰勞馬(시벌로마)”

훗날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져 주마가편(走馬加鞭)과 뉘앙스는 약간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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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참전에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한자유희  유사고사성어 들 찾아서 하나씩 옮겨 보았다.

 

足家之馬(족가지마), 足家苦人內(족가고인내)


아주 먼 옛날 중국 진나라 시대에, 어느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의 성씨는 신체의 일부를 따르는 전통이 있었다.
대대로 귀가 큰 집안은 이(耳)씨, 화술에 능통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집안은 구(口)씨와 같은 식이었다.
그곳에 수(手)씨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손재주가 뛰어난 집안이었다.
이 '수'씨 집안에는 매우 뛰어난 말 한필이 있었는데, 이 역시 수 씨 집안의 손재주에 의해 길들여 진 것 이었다.
어느 날 도적들과의 전쟁에 수 씨 집안의 큰 아들이 이 말을 타고 나가 큰 공을 세워 진시황으로 부터 벼슬을 받았다.
이것을 본 앞집의 족(足)씨 집안에서는.
"손재주나 우리집안의 달리기를 잘하는 발재주나 비슷하니 우리도 말 한 필을 길러봄이 어떨까?"
하여 말 한 필 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한달 후, 도적들이 보복을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이를 본 족씨는 아들에게,"어서 빨리 수씨 집안 보다 먼저 우리말을 타고 나가거라"
하였고 족씨 집안의 장자는 말을 타고 나가다, 대문의 윗부분에 머리를 털리며 어이 없게도 죽고 말았다.
이를 본 족씨는 통곡하며,
"내가 진작 분수에 맞는 행동을 했더라면, 오늘의 이 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을..."하며 큰 아들의 주검을 붙잡고 통곡하였다.
이때부터 세인들을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足家之馬(족가지마) 라고 말하곤 한다.

뜻: 자기의 주제도 모르고 남의 일에 참견 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하는 말.

* 파생어- 足家苦人內(족가고인내)- 옛날 족씨가문의 큰아들이 집안에서 죽음으로 인해 비롯된 말.
(족씨가문의 집안 사람으로 인해 괴로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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